환자와 정상인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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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소들

– 서민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 교수), (CBS 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2011년 10월 방영)

우리는 우리와 조금 다르면 그들을 비정상으로 치부하고 그들과 놀지 않습니다. 개구리의 경우 다리가 하나 더 있으면 비정상입니다. 간혹 어떤 비정상에는 열광하기도 합니다. 네 잎 클로버의 경우 사람으로 따지면 발가락이 하나 더 있는 기형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행운의 상징으로 생각합니다. 백마 역시 사람으로 따지면 색소가 없는 알비노증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백마를 타보고 싶어 환장을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 모든 비정상이 찬사를 받는 건 아닙니다. 대부분의 비정상은 ‘차별’을 받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합니다. 우리가 하도 그러니까 고양이마저 아랍인이나 흑인이 나오면 오바마라 할지라도 인상을 쓰고 히틀러라고 해도 백인이면 온화한 표정을 짓습니다.

하지만 이 정상과 비정상은 아주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어떤 분야에서 비정상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키가 작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비정상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키작을 것을 ‘루저’라고 표현했죠. 머리숱이 없다는 것도 엄청난 비정상입니다. 저는 머리숱이 없느니 차라리 눈이 작은 제가 좋습니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왼손잡이는 결혼을 반대할 만한 결격사유였습니다. 성에 따른 차별도 존재합니다. 우리 사회는 대개 여성들이 차별 받지만 이렇게 가끔 남성이 차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조인성씨는 여성이 다가가니까 해맑게 웃으며 손을 잡지만 남성이 다가가니까 싸우려고 인상을 씁니다. 외모 또한 차별의 중요한 기준입니다. 우리가 만일 이 잘생긴 장동건씨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못생긴 사람들은 전부 비정상이 됩니다. 심지어 잘생긴 사람들은 강도짓을 해도 동정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왜 그런 짓을 해? 쯧쯧쯧.’ 그러면 범죄는 못생긴 사람들이 저질러야 합니까? 저는 범죄자의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요?

이렇게 정상과 비정상은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누구나 어떤 분야에서는 비정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마에 점이 있는 여인도 있지만 마를린 몬로도 입술 옆에 점이 있습니다. 정상으로 간주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아랫사람을 괴롭히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회사에서나 이런 사람 한두 명은 있게 마련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과연 정상일까요?

또한 우리는 늘 겉모습에 주목하지만 몸 속에도 비정상적인 요소가 아주 많습니다. 예를들어 제 어떤 친지는 건강검진 때 CT를 찍었는데 폐에서 사마귀 모양의 결절들이 수없이 발견되어 아주 놀랐습니다. 제 친구 하나는 군대 가려고 건강검진을 받다가 간이 오른쪽에 있어야 되는데 왼쪽에 있는 걸 알고 혼비백산을 합니다. 알고보니 그 친구는 내장이 좌우가 완전히 바뀐 소위 ‘사이투스 인버스’ 환자였던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 몸 안에도 얼마든지 비정상의 요소가 많이 있습니다. 의학이라는 학문은 불편을 끼치는 이런 비정상을 교정해서 정상으로 돌려 놓으려는 일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고 비정상을 ‘환자’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가벼운 병이라고 할지라도 환자가 된다는 것은 본인에게 큰 충격입니다.

실제로 90년대만 해도 어떤 사람이 암이 발견되었다고 할 때는 본인에게 알리지도 않았습니다. 본인은 태평한데 주위 사람들만 걱정하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암에 대한 인식이 조금 바뀐 지금은 그래도 본인에게 암을 통보하지만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들도 암 선고를 받으면 굉장한 충격을 받습니다. 배우 전수경씨는 기자회견장에서 갑상선 암에 걸렸었다고 하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갑상선 암에 대해 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나 갑상선이 있습니다. 갑상선은 목 아래 있는 조그마한 기관으로서 갑상선 호르몬을 분비합니다. 이 호르몬은 우리가 에너지를 얼마나 빨리 쓸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갑상선 호르몬이 너무 많이 분비되면 아무리 먹어도 대사가 빨라서 살이 찌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위에 약해지고 손이 늘 축축할 뿐아니라 눈도 튀어나오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갑상선 호르몬이 나오지 않을 때는 힘이 없고 추위에 약하며 우울하고 심지어 변을 잘 보지 못합니다. 그러니 갑상선 호르몬은 우리 몸에서 적정량이 있어야 됩니다. 이 갑상선에도 암이 생깁니다. 갑상선 암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게 증가하는 암입니다. 특히 여성에게서 그 빈도수가 빨라서 이미 2005년에는 16.7%로 유방암을 제치고 여성 암 중 가장 흔한 암으로 자리를 굳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 주변에서도 ‘갑상선 암이다 어떻게 해야되느냐’ 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건 비단 우리나라 일만이 아니라 미국 유럽 캐나다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체 왜 이런 암이 증가하는 걸까요? 환경오염이 심해지고 CT 같은 것을 많이 찍고 하니까 는다는 가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가설은 왜 하필 다른 암 말고 갑상선 암만 가파르게 증가하느냐는 물음에 대답하지 못합니다. 다른 가설은, 진단 기술이 발달해서 옛날에 잡아내지 못하던 것을 지금은 보편화된 초음파 검사 등을 통해서 많이 발견하는 것 아니냐 하는 것인데 이 가설이 맞을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갑상선 암을 목을 만져서 진단했는데 1.5cm 이상의 암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갑상선 초음파를 통해서 뭔가 의심적인 것이 있으면 조직검사와 미세바늘 흡입을 통해서 mm단위의 암도 발견합니다. 그렇다면 갑상선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줄어들었을까요? 갑상선 암은 꾸준히 늘어나는데 사망률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입니다. 다시말해 진단기술의 발전은 갑상선 암의 사망률을 낮추는데 전혀 기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사실 갑상선 암은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병리의사들 사이에서는 부검할 때 가장 흔히 나오는 암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즉, 갑상선 질환을 전혀 앓지 않던 사람도 그냥 부검하다가도 발견되기도 합니다. 심지어 Harach라는 학자는 갑상선과 전혀 상관없이 죽은 환자 101명을 부검한 결과 그 중 36%에서 갑상선 암을 찾아냈습니다. 한술 더 떠서, 시간만 충분했다면 모든 사람에게서 갑상선 암을 찾았을 것이다 라고 합니다. 그러면 갑상선 암은 치료할 필요가 없는 걸까요? 그 중에서도 뼈나 폐로 전이되는 암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갑상선 암은 조직에 따라 구분이 되는데 그 중에 가장 흔한 것이 전체의 80%를 차지하는 ‘유두상’ 암입니다. 이는 전이가 되지 않는 아주 착한 암입니다. 지금까지 갑상선 암이 가파르게 증가했던 것은 이 유두상 암이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뭘까요? 갑상선은 우리 몸에서 꼭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갑상선 암이 발견되었다고 하면 대부분의 의사들이 갑상선을 모두 떼어내고 나머지 평생 호르몬을 먹으라는 처방을 합니다. 하지만 전이도 되지 않고 죽지도 않는다면 과연 이렇게 처절한 처방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유명 학술지(JAMA)에 이미 그럴 필요가 없다고 나왔습니다.

의학은 사람을 죽이는 비정상에 주목해서 그것들을 교정하는 학문입니다. 그러나 갑상선 암의 경우처럼 우리가 모르고 살아도 될 그런 암을 괜히 환자에게 통보함으로써 환자와 갖고에게 불편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의학은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을 만들어 내고 그 기준을 수시로 변화시킴으로써 정상인을 환자로 둔갑시킬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고혈압의 기준을 조금만 낮춘다면 우리나라 성인의 절반 이상을 고혈압 환자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콜레스트롤 기준치를 조금만 더 낮춘다면 평소 정상이던 사람이 콜레스트롤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의학은 정상인의 기준을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기준을 강화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갑상선 암의 경우처럼 굳이 모르고 살아도 되는 경우도 있는데도 환자가 된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만약 진단 기준을 강화시키더라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아울러 우리도 우리와 좀 다르다고 비정상 딱지를 붙이고 그들을 차별하는 일을 그만 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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