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주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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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박광수 씨가 세상을 경험해보면서 조금 알 것 같은 삶의 이야기를 모아 <살면서 쉬웠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라는 책을 냈습니다. 그 책에 “나를 일깨운 믿음”이란 이야기입니다. 어린 시절에 나는 집 안 물건을 훔쳐 내다 파는 못된 도벽이 있었습니다. 4형제 중 막내였던 나의 범죄는 대부분 발각이 되었습니다. 매번 부모님과 형들에게 혼났지만 도벽이 쉽게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초등학생 때 시작하여 고등학교 1학년 여름까지 내 도벽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다행히 그해 여름 도벽을 고치게 된 사연이 있습니다.

당시에 우리 가족은 2층 주택에 살았습니다. 무던히 덥던 어느 날 2층 방에서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 1층 계단을 내려가는데 둘째 형과 어머니가 다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다툼의 이유가 바로 내 문제였습니다. 형이 애지중지하던 카메라가 사라졌는데, 어머니는 보나마나 범인이 막내아들이라고 단정하였습니다. 어머니의 직감대로 나는 일주일 전쯤에 형의 카메라를 청계천 장물아비한테 팔아버렸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형이 어머니를 나무라고 있었습니다. “물건만 없어지면 막내 짓이라고 다그치니까 막내가 더 삐뚤어지는 거예요. 저도 더 찾아볼 테니 확인되기까지는 일단 믿어 주자고요.” 그 말을 들은 나는 차마 1층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다락방에서 다음 날까지 숨어 있었습니다. 거기서 혼자 울었습니다. 나를 믿어준 형에 대한 미안함과 반성의 눈물이었던 것입니다. 이튿날 어머니에게 형의 카메라를 팔았다고 고백했는지, 딱 잡아뗐는지 기억이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날 이후로 내 도벽이 고쳐졌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날 믿어 주려고 하는데 그 믿음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게 이유였습니다.

무엇이 이 사람을 변화시켰습니까? 믿어주는 믿음이 사람을 변화시켰습니다.
믿는다 것과 믿어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믿는다 것은 믿을 만해서 믿는 경우가 있고, 믿음을 줘서 믿는 경우가 있습니다. 계속해서 믿음을 주기 때문에 그 믿음으로 믿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면에 믿어준다는 것은 믿을 만하지 않는데, 믿어주는 것입니다. 믿음을 주지 못하는데 믿어줘서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믿을 만하지 않는데 믿어주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기다리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믿어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축복해주는 것입니다. 믿어주고, 축복해주고, 기다려주는 만큼 변화되고, 성숙하고, 자기 사명을 알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나는 싫어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이것입니다.
“외국에 나가면 한국 사람들을 조심해라”
“특히 친절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경계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캄보디아에서 살 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이 소리입니다. 캐나다에 올 때에도 제일 많이 들었던 소리가 이 소리입니다. 우리 민족은 콩 하나도 나누어 먹는 그렇게 정이 있는 민족인데 어찌 이렇게 되었는지 마음이 참으로 아립니다.

낯 선 나라에서 외롭고 힘들고 두려움을 갖고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서로 믿어주고 이해해주고 축복해주고 격려하는 따뜻함을 갖고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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