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불편한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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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행복에 영향을 주는가에 대해서 설문 조사를 해보면 대략 다음의 9가지가 등장하곤 한다.

첫째, 돈이 있어야 한다. ‘잘 산다’라는 말은 언제부터인가 ‘돈이 많다’라는 뜻이 되었다. 또 누군가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는 ‘계라도 탓니?’하고 묻는다. 서양에서도 ‘Did you win the lottery?’라고 한다.

둘째, 아프지 않아야 한다. 고통 중에 있으면서 행복해지기는 힘들다. ‘마취제’야말로 인류의 행복에 가장 획기적인 발명품이라고 일컬어진다.

셋째, 힘이 있어야 한다. 을의 처지만큼 불행한 것도 없다. 영화에서마저 ‘Force be with you’라고 인사한다. 사냥하는 것만큼, 혹은 정복하는 것만큼 짜릿한 것도 없다. 인간은 과학으로 자연과 우연을 정복하고, 힘으로 땅과 민족을 정복한다.

넷째, 자기에게 만족해야 한다. 지금 이 모습이 아쉬워도 이것이 ‘나’인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다.

다섯째, 가정과 사회가 평등하고 정의로워야 한다. 내가 이만큼 했으면 당신도 이만큼 해 주기를 원한다. 노동하고 수고한 만큼 거기에 비례해서 가져가야 한다. 누군가가 불공정한 특혜를 받는 것만큼 우울한 것도 없다.

여섯째, 성이 해방되어야 한다. 심리학자들은 ‘성’이 속박당하면 깊숙한 무의식이 꼬이게 된다고들 한다. 그래서 불법이 아닌 한, 성을 향유하는 것이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길이다.

일곱째, 승리해야 한다. ‘패배자(looser)’로 낙인 찍히는 것만큼 모욕적이고 우울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전쟁이건, 스포츠건, 게임이건, 사업이건, 연애건 간에 우리는 무조건 승리해야 한다.

여덟째, 인정받아야 한다. 소외 당하면서 행복하기란 쉽지 않다. 주위 사람들에서 이해받고, 사랑받으며, 환영받고, 존경받으며, 심지어 유명해지는 것만큼 기쁜 일도 없을 것이다.

아홉째, 장수해야 한다. 건강하게 오래 수명을 누리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극한 복으로 여겨졌다. 인생 뭐 별 거 없다면, 오래 사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다. 단명할 경우 남겨진 가족의 불행이 보인다면 더더욱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까지 말한 행복과 전혀 반대되는 의견을 내 놓은 사람이 있다. 그는 인류의 스승 중 하나라고 알려졌고 지금까지 수많은 추종자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예수라는 이름의 그는 ‘산상설교’라고 알려진 기록의 맨 앞 부분에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가르침을 내놓는다.

첫째, 그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하였다. 가난한 사람이란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람이고, ‘마음 저 깊숙한 곳이 가난한 사람’이라는 것은 ‘돈에 초연하여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하늘나라가 이들의 것이라고 하였다.

둘째, 그는 슬퍼하는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했다. 여기서 슬퍼한다는 것은 ‘신음(mourn)’한다는 뜻이고 고통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당장 진통제나 마취제로 고통을 없앨 수는 없으나 그보다 더 큰 희망으로 위로를 받는다고 했다. 테레사 수녀는, 이 지상의 가장 끔찍한 고통도 천국의 관점에서 보면 하룻밤 불편한 숙소에서 자는 것과 같다고 했다.

셋째, 그는 온유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했다. 온유한 사람은 세상을 정복하려 하지도 않고 명예나 영광을 차지하려고 발버둥 하지 않는다. 예수 자신만 하더라도 제우스처럼 세상에 등장한 것이 아니라, 금방 꺼져버릴 것 같은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왔고, 30년을 조용히 지내다가 결국 마지막 3년간의 행적 때문에 범죄자로 처형 당했다. 숨는 것을 좋아했고, 발가벗긴 채로 군인들에게 둘러싸여 모욕 받고 무시당해도 화내지 않았다.

넷째, 그는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했다. 그가 말한 ‘의로움’이란 ‘정의’라기 보다는 죄없는 상태, 즉 ‘거룩함’에 가깝다. 대체로 성인일수록 스스로를 가장 큰 죄인이라 생각하였고, 거룩함에 대해서는 남다른 목마름과 열정을 가졌다. 그들은 자신의 처지에 절대 주저앉지 않는다.

다섯째, 그는 자비로운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했다. 정의와 평등은 집을 짓기 위한 시작이요, 토대가 될 수 있지만 그것 자체가 집이 될 수 없고, 우리에게 평화 자체를 주지 못한다. 받기 위해 주는 것이 정의요, 주기 위해 주는 것이 자비이다. 내가 손해보는 것 같지만 그래도 주는 것만이 평화에 이르는 길일 것이다.

여섯째, 그는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했다. 몸이 깨끗한 것과 마음이 깨끗한 것은 서로 구별하기 어렵다. 자유로운 성생활에는 몸과 영혼이 별개라는 인식도 한 몫을 한다. 그러나 마음이 순결하지 않으면 인식도 흐릿해져서 진실에 눈이 어두워진다.

일곱째, 그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했다. 피스메이커는 겁쟁이가 아니라 오히려 전쟁을 막는 워리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가져오는 평화는 승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난과 순결과 순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여덟째, 그는 옳은 것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한다. 박해 받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 가지게 되는 결과는 같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궁핍하듯이, 박해 받는 사람은 세상으로부터 받는 사랑이 궁핍하다.

아홉째, 그는 자기의 멍에는 가볍다며 십자가(죽음)를 권유한다. 위의 8가지는 모두 일상에서의 작은 ‘죽음들’이다. 상식과 본능에 반하고 그래서 스스로에 대해서 죽어야 얻어지는 것들이다.

행복에 대한 기준이 상식과 상당히 어긋난다. 내가 보기에 예수를 본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성인이거나 위선자 둘 중 하나일 것 같다. 아니면 성인이 되고자 애쓰는 ‘지혜로운’ 자인 동시에, 위선자 처지가 될 수 밖에 없는 ‘불행한’ 자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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