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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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인근(오늘날 이라크)에서 지중해 연안에 인접한 팔레스타인을 지나 나일강 하류 삼각지까지 이르는 비옥한 지역을 고대 초생달 지역이라고 하는데 세계 4대 문명 중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이 이곳에서 발생하였고 여기를 ‘고대 근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바로 이곳에서 고고학적인 발굴을 통해 수없이 명멸하였던 문명과 사라진 언어들이 발견되었다. 수메르, 아카디아,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히타이트… 그들은 나름의 신화와 문명을 가지고 시대를 풍미했으나 오늘날 그시대의 정체성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남은 민족은 찾아볼 수 없다. 나라가 망하면 민족 또한 주위에 흡수되고 사라져 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대문명의 중심에 단 한번도 선 적이 없었던 작고 보잘것 없는 한 민족이 오늘날까지도 자신들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가지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그들이 지닌 한 아이디어는 오늘날까지도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뿌리가 되어 세계사에 깊고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이 고대문명들 틈바구니에서 가졌던 것은 단지 새로운 ‘아이디어’였다. 처음부터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가졌던 것도, 또는 한 시대에 갑자기 생겨난 것도 아닌, 서서히 스며들었지만 결국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파급된 아이디어였다. 나라는 이미 기원전 586년에 공중분해되어 이후 백성들은 유배와 식민지 생활을 전전하였다. 고대 사회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대체로 민족은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린다. 더 강한 신을 모시게 되고 결혼 등을 통해 종교, 문화적으로 민족 전체가 더 강한 나라에 흡수되어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이 민족의 북쪽 절반이 그런 식으로 역사에서 사라졌고 당시의 수많은 가나안 민족들의 운명 역시 그러했다. 그런데 정치적, 국가적 토대 없이 남쪽 유다 민족은 그 때부터 지금까지 기적적으로 생존했다. 기원전 600년 경부터 일찌감치 식민지 생활에 돌입했고 기원후에는 얼마되지 않아 로마군에게 삶의 터전마저 박살이 나서 이후 세계 각지로 흩어져 이민자 생활을 해왔다.

국가와 영토 없이도 2500년 이상 오늘날까지 살아남게 한 그 새로운 아이디어란 무엇일까? 그것은 당시의 지배적인 사고와 문화에 비교해볼 때 실로 혁명적인 아이디어였다. 고대 사회에서는 자연의 힘을 나타내는 모든 것이 ‘신’이었다. 땅, 하늘, 바람, 번개, 물 등이 모두 신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그래서 신은 하나의 신이 아닌 ‘여러’ 신들이 있었고 그들도 탄생과 죽음을 맞이했다. 처음에는 히브리인들도 이런 세계관을 공유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상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등장했다. 신은 하나요 그 신은 자연과 구분되어 자연 밖에 혹은 위에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다만 신은 자연을 ‘통해서’ 알려질 뿐이다. 또한 자연 뿐만 아니라 ‘역사와 사건’을 통해서 알려지기도 한다. 즉,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알려지는 것이다.

이 간단한 아이디어가 점차 히브리 전 문화에 스며든다. 그리고 자연을 초월한 신이 역사를 주관한다는 아이디어가 그들이 가장 비참한 역사를 지날 때에도 독립된 민족으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남게 하였다. 그 비참한 역사를 그들은 자신들이 버림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거대한 계획 속의 일부로서 이해했던 것이다. 이들이 그런 신념을 담아 남긴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 바로 히브리 성경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가장 보수적이고 지루한 글들로 치부되지만 당시에는 가장 혁명적인 글들이었다. 그것은 글이 다룬 소재 때문이 아니었다. 창조 설화와 홍수 설화에 등장하는 언어들은 대부분 주위 문명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흔한 소재였다. 그러나 그것이 전하는 메세지는 참으로 혁명적이었다. 그 신화적 소재들을 자신들의 세계관으로 수정한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인 ‘에누마 엘리시’에서 마르둑 신은 하위 신들의 불평을 하는 바람에 노동을 시키기 위해 인간을 창조한다. 인간은 애초 염두에도 없었다. 그것도 반란을 일으킨 어떤 하위 신을 죽이고 그 피와 진흙을 섞어 만든다. 대홍수는 너무 수가 많아진 인간들이 일으키는 소란을 잠재우고 편히 잠을 자기 위해서 일으킨 것이다. 이에 비해 히브리 성경에는 신의 인간창조가 신의 변덕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일관된 계획에 의한 것이고 인간 창조는 모든 창조의 클라이막스를 이룬다. 처음부터 인간은 일꾼이 아닌 자녀요 사랑의 존재이다. 그리고 홍수의 원인에는 일관된 도덕적 가치관이 있다. 히브리 성경의 최종 편집들의 마음에는 윤리적이고 유일하며 역사를 주관하는 신적 존재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2차대전 당시 나찌수용소를 경험한 어떤 심리학자가 있었는데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자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하였다. 놀랍게도 극도로 비참한 상황에서 사람을 생존하게 하는 것은 ‘건강/체력’이나 ‘의지력’이 아니라 바로 ‘희망’이었다. 그냥 일반인 입장에서 히브리 성경에서 받을 수 있는 작은 교훈이다.

<Yale 대학교 교양학부 강의 ‘Introduction to the Hebrew Bible’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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