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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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 신부의 강의 중> 신호등 2015.08.28호

사랑. 너무 흔한 말이지만 또한 너무도 소중한 말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많은 소중한 단어들이 있지만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사랑’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에 관하여 좋은 정의들이 많이 있지만 우리가 얘기하는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자신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안에서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바로 그 사랑을 추구해 나가야 합니다. 신의 사랑을 내 안에 담기 위해서는 내가 우선 비우면서 공간을 좀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포도나무 같은 경우에 가지가 땅에 떨어지면 그 가지는 열매도 맺을 수 없을 뿐더러 말라 비틀어져 버립니다. 우리가 만난다고 할 때는 서로 붙어있고 생명을 나누며 열매도 맺는 그런 모습입니다. 떨어져 나간다면 그 생명력이 흐를수가 없습니다. 포도나무에 쇠젓가락을 박았다면 공간적으로는 같이 붙어있기는 하지만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생명이 서로 흐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남에는 동질성이 필요합니다. 간을 이식할 때도 아무 간이나 붙일 수 없습니다. 일치를 이루어 내 몸처럼 서로 잘 흐를 수 있는 것만 이식할 수 있습니다. 만남은 흐름을 통해 약한 것이 살아나야 합니다. 만남이 없으면 가난한 사람과 허약한 사람은 죽고 맙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만날려면 자신을 비워주어야 하므로 만나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외롭고 고독하게 죽어갑니다.

사랑은 또 만남과 일치와 흐름 외에도 무조건 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조건적인 사랑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않그렇습니다’ 라고 할 수도 있지만 가만히 자신을 성찰해보면 그 안에 ‘네가 xx하는 한’이라는 조건들이 달려있습니다.

어떤 아이가 있었는데 집에서 키우는 거북이랑 노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어느날 학교 갔다가 돌아와보니 거북이가 죽어있습니다. 움직이지를 않았습니다. 몹시도 슬프게 울었습니다. 너무도 울음을 그치지 않으니 퇴근해서 돌아온 아버지가 이를 보고 안타까운 나머지 곰곰히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죽은 거북이가 다시 살아올 수는 없으니 장례식이나 성대하게 치뤄주자꾸나.” 아이는 울음을 그쳤습니다. 그래서 뒷뜰 양지바른 곳에다 무덤을 마련하고 비석에도 ‘거북지묘’라고 새기고 꽃상여도 만들어 준비했습니다. 이제 장례식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거북이가 사라졌습니다. 찾았더니 어항에서 다시 헤엄치고 있습니다. 죽은 줄 알았는데 죽은 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때 아이가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저 거북이 죽여요.”

이 아이는 거북이를 사랑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거북이와 같이 노는 놀이를 사랑했던 것일까요? 장례식 놀이라는 더 큰 빅재미가 나타나자 살아있는 거북이는 필요없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거북이는 죽어야했던 것입니다. 어찌보면 끔직하지만 우리들의 삶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그 ‘사랑’이라는 것들을 현미경으로 자세히 보면 조그만 글씨로 ‘약관’들이 깨알 같이 적혀 있습니다. ‘네가 xxx를 할때’라는 조건들입니다. 마치 보험 약정서에 보험금 금액은 앞면에 대문짝하게 씌여있고 약관은 뒷면에 깨알 같이 적혀있는 것과 같습니다. 남녀간의 사랑은 ‘네가 나를 배신하지 않는 한’, 자식에 대한 사랑도 가끔은 ‘네가 엄마말을 잘 듣는 한’ ‘성적이 반에서 몇등 안에 드는 한’ 등이 깨알 같이 숨어 있습니다.

남녀가 오그라드는 멘트를 하며 사랑합니다. ‘나 어제 한강에 백원짜리 빠트렸어. 그거 찾을 때까지 당신을 사랑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눈이 내린다면 봄은 오지 않을거야.’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백명 있다면 그 중 하나는 나고, 열명 있다면 그 중 하나는 나고,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나는 이 세상에 없을 거야.’ 이렇게 하고 군대에 갑니다. 매일같이 꽃편지가 옵니다. 뜸해지다가 편지가 그칩니다. 마지막에 딱 한통 받은 편지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오빠, 나 힘들어. 이제 헤어져.’ 우리 군인 아저씨 수류탄 꽂고 탈영합니다. 담도 못넘고 걸립니다. 이 아저씨의 사랑에는 ‘네가 고무신 거꾸로 신지 않는 한’ 이라는 약관이 있었습니다. 간혹가다 방송이나 신문을 보면 애인 집에 휘발류통 들고 찾아가 드러눕고 하는 해프닝들이 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데 마찬가지 모습입니다.

그러면 이런 다양한 조건들을 충족시킬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가진 것 없고 백없는 사람들이겠습니까 아니면 돈도있고 빽도 있고 힘도 있는 사람들이겠습니까? 당연히 후자입니다. 그러면 이런 세상에서 어떤 사람들이 사랑받겠습니까. 당연히 조건을 많이 채워주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사람들은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 지금 이세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 사랑을 보면 열광하는 것입니다. ‘내가 널 사랑할 수 있는 이유를 보여달라’라고 하는 세상에서, 보지도 않고 약속 받지도 않고 사랑하는 존재를 보면 놀라와하는 것입니다.

꽃은 좋은 향기를 뿜지만 자기에게 물을 주고 가꾸어 주는 사람에게 만 향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거들떠 보지 않고 치워버리라던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고 심지어 자기를 꺾는 사람에게도 향기를 내뿜습니다. 방향제는 선택적입니다. 뿌리고 싶은 곳에만 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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