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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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봄 기운이 부지런히 온 하늘과 땅으로 소리 없이 번져간다. 햇살 스민 푸른 하늘이 눈부시고, 때를 노리던 아기 잎새들은 가지 끝에서 조용히 기지개를 킨다. 푸른 나무와 파릇한 잔디 사이로 숨어있던 노란 개나리가 살포시 고개를 내민다. 햇살 비친 창가에는 강아지 하품이 노곤하다. 따듯한 봄날의 산들바람은 통장에 돈이 별로 없는 사람의 마음마저도 설레게 한다.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얘기하고 창공은 그 손수 하신 일을 알려주도다. 낮은 낮에게 말을 전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는도다. 그 말도 이야기도 비록 소리 없어도 그 소리 온 땅으로 퍼져나가고 그 말은 땅 끝까지 번져가도다. (시편19)

신의 첫 언어는 침묵이라고 했다. 첫 언어란 첫 열매만큼이나 귀한 의미를 지닌 것이다. 침묵 속에서 신은 자신의 존재와 의미를 우리에게 드러낸다. 그리고 또한 우리 자신의 참모습도 그 때에 비로소 드러난다. 침묵은 존재의 확성기요 돋보기이다.

예수의 탄생과 죽음 사이 약 30년은 (12살 때 있었던 작은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전해지는 바가 거의 없다. 기나긴 침묵의 세월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나는 커다란 위로를 받는다. 그도 수많은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고 매일 반복되는 노동을 견디며 때로 슬퍼하고 때로 고통 받으며 지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은 인간 삶의 조건 모든 면을 구석구석 축복한 셈이다.

만약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면 그 신은 침묵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신인 것 같다. 이 광활한 우주는 어둡고 텅 빈 침묵의 공간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 속에 간간이 뿌려져 있는 빛과 열과 생명은 마치 존재의 어두움 가운데 드문드문 피어있는 들꽃과도 같다. 그런데 막상 그 침묵의 바다에 떠 있는 작은 꽃과도 같은 지구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소음으로 가득하다.

소음에는 들리는 소음도 있지만 보이는 소음, 정신적인 소음, 인간관계의 소음도 있다. 오늘날의 문화현상이기도 하다. 인간 존재의 소중한 의미는 이런 저런 소음으로 가려져서 잘 식별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마치 우주의 캄캄한 냉기를 두려워하듯이 침묵의 시간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소음과 유희를 일부러 찾아 나선다. 부산스럽게 움직여야 하고 잔치를 벌여야 하고 심심풀이에 몰두해야 한다. 16세기 수학자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문제는 단 1시간을 침묵하지 못하는 그 무능력함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나는 소음이 침입하는 것을 차단하고 일부러 침묵을 택하여 침잠했던 적이 과연 있었던가?

아이들 라이드 때문에 길바닥에 뿌리는 시간이 힘들고 지쳐 불평하지만 막상 빈 시간이 주어지는 날에는 드라마와 예능을 찾는다. 삶이 뭔가로 촘촘하지만 그 중에 단 한 시간도 침묵하는 시간은 드물다. 무료함과 적막함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두려워한다. 그 속에서 내 추한 본연의 모습을 대면하기라도 한다면 깜짝 놀라 소음 속으로 다시 도망간다. 그래서 관계의 소음이라도 찾아 나선다. 투명인간 취급 받는 것이 두려워 자신의 존재를 관계 속에서 무리하게 외친다. 소음 하나가 더해진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한 번 두 번 투명인간 대접을 받다 보면 이것만큼 편한 것도 없다. 냉탕에 들어갈 때 처음에는 견디기 힘들지만 막상 오래 앉아있다 보면 쾌적해질 때가 있는 것처럼, 일부러 투명인간이 되기를 선택한다면 점점 자유로워진다. 자꾸 그 맛을 즐기게 된다. 침묵도 마찬가지로 익숙해지면 점차 편안해진다. 그 조용한 공간 속에 정말 소중한 존재들이 드러나고, 외면하고만 싶었던 내 본연의 모습도 고개를 내민다.

어둠은 빛이 없는 상태, 냉기는 열이 없는 상태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래서 이 넓은 우주 대부분이 텅 비어 있다는 것을 무서워하기만 하였다. 그러나 어둠이 짙을수록 빛이 밝고 냉기가 심할수록 열이 귀하다. 존재를 떠받치고 있는 것도 ‘무’일 것이다. 소음으로 시작해서 소음으로 인생을 마감하지 않으려면 이제 좀 용감히 침묵을 찾아 나서야 하지 않을까?

침묵은 창조를 즐겨 하는 신의 첫 언어이다. 인간은 잔치의 소음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고 있지만, 봄은 침묵의 잔치 속에서 자신을 꽃피우고 있다. 내일은 외로울지 몰라도 오늘 하루는 내가 투명인간임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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