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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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옆에서 백야드로 들어가는 쪽문이 망가졌다. 문이 달려있던 펜스기둥과 그 옆 기둥 두 개는 30년이 흐르는 동안 바닥에서 썩어 부러졌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그 기둥에 매달려있던 문과 그 옆의 펜스가 휘청거려 아슬아슬했다. 조만간 펜스 상당부분이 쓰러질 것만 같았다. 몇 년이나 그렇게 방치해오던 참이었다. 유난히 좋았던 날씨 탓이었는지,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고쳐보려는 마음이 일었다. 결국 삽을 꺼내어 땅을 팠다. 뿌리와 기존 콘크리트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다. 어찌저찌 기둥들을 교체하고 새 콘크리트를 부어 고정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문짝과 펜스 판자들은 재활용하고 대신 새로 스테인을 칠했다. 새 것처럼 변했다. 아내에게 자랑했더니 아내는 그새 저쪽 구석 또 다른 부러진 펜스 기둥을 발견했다. 다시 땅을 파려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대꾸를 하지 않았다.

백야드에는 이웃집을 가리는 격자나무 펜스가 있었는데 이것도 몇 년 동안 부서진 채 방치되고 있었다. 내친 김에 이것도 수리했다. 이웃집을 시야에서 막으니 데크가 아늑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30년 지난 데크 바닥은 참으로 난감했다. 오일로 스테인을 좀 발라볼까 했지만 홈디포에 근무하는 한국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 그만 포기했다. 나무 바닥이 워낙 낡은 탓에 날씨에 따라 수축이 심하니 스테인을 한다 해도 금방 벗겨져버릴 것이 뻔했다. 한 5년 전에도 데크 바닥을 칠한 적이 있는데 겨울을 지낸 다음해에 바로 흉하게 벗겨져 버렸었다. 차라리 매년 바닥을 적당한 제품을 사용해서 잔뜩 끼어있는 때를 씻어내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막상 씻어보니 바닥 상태가 한결 좋아져서 생각보다 만족스러웠다.

작업을 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처음 접해보는 일들이라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막연했고, 예산에 맞게 계획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었다. 또 막상 작업에 들어가면 생각하지도 못하던 난관에 계속 부딪혔다. 작업이 순탄하게 진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궁리하고 착안하고 닥친 어려움을 창의적으로 하나하나 극복하는 동안 어느새 이런 과정들을 즐기게 되었다. 식사를 준비하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집안 청소를 할 때는 도저히 느껴보지 못하던 스릴이었다. 머리 속은 하루 종일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점점 집수리에 깊이 몰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문득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옴을 느꼈다. 마치 젊은 시절 친구들과 오락에 빠져있을 때 느끼던 것과 비슷했다. 영혼이 한눈을 팔고 있는 것 같은 죄책감이랄까? 요즘 온통 집수리에 빠져있는 것이 마음 한구석에 ‘고민’이라고 슬쩍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놓아 보았더니, 역시 그것이 왜 고민거리가 되는지 잘 이해 못하는 눈치였다. 당연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 혹은 건강한 취미 생활을 갖는 것이 왜 문제가 되겠는가?

뭔가에 몰두하는 것은,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 다면 무조건 미덕이라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특히, 직업에 온통 매달리거나, 건강에 도움이 되는 취미활동에 빠진다면 주위에서는 대개 격려를 할망정 비난하는 사람은 드물다. 다만, 쉬엄쉬엄 하라고 조언할 뿐이다. 누구나 노동은 신성하고 건강은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의 가슴에는 저마다 커다란 구멍이 하나 있다. 그리고 그 크기는 천국만한 크기라고 한다. 지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고 가슴은 그래서 늘 공허하다. 아무리 일에 매달리고 취미에 빠져도 소용이 없다. 노동과 취미를 찬양해봐야 모두 장난감에 불과하다. 장난감으로는 우리 영혼을 채울 수 없다. 사람은 나이가 많건 적건 모두 어린이라고 한다. 다만, 죽을 때까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달라질 뿐이다. 어릴 때는 고무신이나 고무총을 가지고 놀고, 나이가 들면 비즈니스(사업)를 가지고 놀거나 사람들과 파워(영향력)게임을 하며 논다. 장난감을 내려놓으면 가슴에 무섭고 커다란 구멍이 보이기 때문에 장난감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죽을 때가 되면 “얘야, 이제 장난감 내려놓고 집으로 오렴”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하늘에서 들리게 된다.

“당신을 위해 나를 만들었기에 내 영혼 당신 안에 쉬기까지 ‘찹찹하지’ 않나이다.” 어거스틴이 고백록에서 한 말이다. ‘찹찹하다’는 ‘들뜨지 않고 차분히 가라앉다’라는 뜻이다. 어거스틴의 경우에는 신(God) 안에 쉴 때에야 비로소 그의 영혼이 ‘찹찹’해졌다. 단순히 취미에 몰두하는 것이 휴식을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지상의 장난감으로는 가슴에 있는 구멍이 조금도 메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천국만이 메울 수 있는 구멍이다.

노동과 취미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애초 신(God)이 설계한 일부이기 때문에 뭔가 우리 인간의 자아실현을 위해 꼭 필요하리라는 것은 분명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마치 곡식 창고를 레노베이션 하는데 몰두하다가 어느 순간 하늘로 불려가게 된 성경의 어느 농부처럼, 나 역시 죽음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이 어느날 장난감들을 갑자기 내려놓게 되는 것이 아닐까? 노동이든 취미이든 그것이 어떻게든 천국의 탯줄에 이어지지 않는다면 모두 헛되고 헛된 것이다.

인간 존재의 무게는 그가 가진 사랑의 무게만큼이라고 한다. 그 무게가 무거울수록 마치 중력의 법칙처럼 천국으로 더욱 이끌리게 된다. 장난감에만 몰두하며 길 잃은 짐승처럼 떠돌지 말고, 그래도 기회가 조금이라도 있을 때 ‘존재의 무게’를 늘이는 데에 마음을 더 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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