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당신은 안녕하신가요? (3) – 당신이 잠든 사이

389

간호사들의 체력이 강철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스물 네시간 변함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환자의 잦은 호출과 가족 구성원의 반복되는 질문과 요청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목소리로 답할 수 있다면! 그러나 어설픈 조각잠에서 깨어나 반복되는 야간 근무를 하게 될 때에는 온 몸의 신경세포 돌기들이 일제히 곤두서 있다. 행여 실수라도 하여 환자들을 다치게 해선 안된다는 생각으로 팽팽해진 관자놀이와 퀭해진 눈으로 더 자주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고 투약과 처치등을 더 면밀히 신경써서 실행해야 한다. 그리고 칼날같이 예민해지기도 하고 그 칼날을 감추기 위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밤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자정이 지나면 곤히 잠든 환자들을 깨우지 않으면서도 매 시간 라운드를 한다. 그들이 아직도 숨을 쉬는지, 낙상하지 않고 본인의 침대에 머물고 있는지, 깨어 있다면 어디 불편한 곳이 없는지, 더운지, 추운지, 배가 고픈지, 갈증이 나는지, 옆으로 몸을 뉘어야 하는지, 베개가 높은지 낮은지를 살핀다. 그러는 와중에도 나도 내 집의 내 침대에 누워 숙면을 취하고 싶다고 맘속으로 몇 만 번씩 외친다.

오래 전 그날 밤도 그랬다. 버드씨는 반복되는 부정맥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현상)으로 입원했었고, 그로 인한 심부전증#1을 겪고 있었다. 버드씨의 심장 박동수가 분당160회가 넘었었고, 두근거림, 어지럼증과 호흡곤란을 호소하여 응급실을 찾게 되었었다. 심장박동을 늦추어 주는 약을 며칠간 꾸준하게 복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밤 버드씨의 심장 박동수는 여전히 분당 100회를 넘어섰고 간혹 120회 이상을 넘기도 하였다. 버드씨는 부정맥으로 진단 받은 지가 수 개월이 되었으므로 뇌졸중(Stroke)#2을 예방하기 위해 매일 항응고제를 복용하고 있었다.

그날 밤 버드씨는 별일 아닌 일로 간호사 호출 버튼을 유난히 자주 사용했다. 침대가 불편하다거나 이불이 손에 닿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자주 벨을 눌렀고, 신경이 곤두선 나는 급기야 나의 무딘 칼날을 내보이고 말았다. 미소가 사라진 얼굴로 버드씨에게 물었다. “이번엔 무엇이 필요하지요?” 버드씨는 싸늘한 나의 얼굴을 보았을 것이다. 그는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신경쓰지 마시오(Never mind).” 나는 그대로 흉부 통증을 호소하고 있던 다른 환자에게로 향했다.

아침 다섯 시부터 여섯 시 반까지는 가장 바쁜 시간이다. 버드씨를 시작으로 머리카락 휘날리며 여러 환자들을 체크하고 있는데 여섯시쯤 동료 간호사가 내게 다가왔다. “네 환자 버드씨가 또 호출을 했어. 두통이 있다길래 혈압을 쟀더니 145/86이고 체온은 정상. 내가 너 대신 타이레놀을 좀 투약할까?” 나는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동료 간호사가 다시 내게 리포트를 했다. “타이레놀 투약 마쳤어. 버드씨가 자기는 평생 두통이라는 걸 경험한 적이 없대.”

여섯시 반이 되었고, 이제 삼십 분 후면 퇴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홀가분해졌을 때, 문득 버드씨가 생각이 났다. 평생 두통을 경험한 적이 없다는데 왜 갑자기 두통이 왔을까. 혈압이 좀 높긴 했지만 그의 평균 혈압과 그닥 차이도 나지 않았는데. 버드씨의 방으로 향했다. “버드씨, 두통은 좀 어떠세요?” 버드씨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누운 채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머리끝이 쭈뼛 섰다. 버드씨는 몸을 움직이지 못했고 오로지 눈만 깜빡일 뿐이었다. 나는 복도를 향해 냅다 소리쳤다. “도움이 필요해. 코드 스트로크(Code Stroke)를 요청하고 담당 레지던트를 당장 호출해줘!!” 코드 스트로크가 방송으로 울렸고 순식간에 많은 수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버드씨를 에워쌌다. 삼십분 전만 해도 멀쩡했던 버드씨는 응급 CT촬영 결과 심한 뇌출혈을 겪고 있었다. 버드씨는 심장과에서 신경외과 집중 모니터실로 옮겨졌다.

나는 그날 여덟시 반을 훌쩍 넘겨 몹시 지친 채로 퇴근했다. 퇴근 길 내내 머리와 마음이 복잡했다. 끝끝내 무딘 칼날을 감추지 못했던 나는 버드씨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내가 더 나은 간호사였다면 버드씨의 뇌출혈을 막을 수 있었을까? 다들 아니었을 거라고 나를 위로했지만, 그날 이후로 누군가가 두통을 호소하기만 하면 긴장하게 되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두통은 내게 더이상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참고)

1. 심부전증: 심장기능의 약화로 전신의 혈액순환에 장애가 오는 현상. 몸이 붓거나 호흡곤란을 겪기도 한다.

2. 뇌졸중 (Stroke): 뇌의 일부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히거나 (뇌경색), 터짐(뇌출혈)으로 뇌의 기능이 일부 손상되는 현상. 중풍으로도 알려져 있다. 뇌경색일 경우 서너시간 안에 적절한 응급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므로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글쓴이: 김귀정.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치다 2002년 캐나다 런던에 정착. 팬쇼 졸업 후 PRN으로 근무하며 웨스턴 대학으로 진학. 졸업 후 현재 RN으로서 환자를 돌보며 신명나게 살고 있음. 글의 내용은 글쓴이의 경험을 토대로 각색되었으므로 사실과 다름을 알려드립니다.)

NO COMMENTS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