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전화 박주선 상담원이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스물네 살 때 급성 늑막염으로 사십여 일 동안 입원했습니다. 하루아침에 걷는 것조차 힘들어지자 너무 두려웠습니다. 병원에 입원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책과 신문을 보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때 생명의 전화를 처음으로 접했습니다. 생명의 전화는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아 주는 상담서비스입니다. 365일 24시간 열려 있었습니다. 퇴원 후에 상담원 교육을 배우고 싶어서 찾아갔습니다. 그때부터 수천 건의 상담전화를 받았습니다. 가족들 사이의 갈등하는 사람들, 이성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 마음이 아파서 삶이 버겁다는 사람들, 직장을 그만두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전화로 만났습니다. 초등학생에서 어르신까지 연령층도 다양했습니다.
36년 동안 상담하면서 사회에서 가장 힘든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상담 초기에는 시집살이로 고생하는 며느리들의 전화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사회와 가정에서 밀려난 중년 남성들의 전화가 많이 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아픈 사연에 공감하며 잘 들어주는 것입니다. 진심을 다해 듣고 있다는 것을 상대방이 느껴야 마음을 엽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 안에 있는 희망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가장 기쁜 순간은 내담자가 마음의 응어리를 털어놓고 “제가 소중한 사람이란 걸 깨달았어요. 다시 용기를 내서 살아볼게요. 이야기 들어줘서 고맙습니다.” 하고, 후련하게 전화를 끊으면 가슴이 벅찹니다. 내 딸들이 어릴 때 남편에게,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상담하러 갔었습니다. 상담하러 갈 때마다 둘째 딸이 물었습니다. “엄마는 뭐가 그리 즐거워?” 그 딸이 자라서 나와 함께 상담원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전화는 다른 사람들뿐 아니라 나와 가족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지 않아도 상대방의 아픔을 공감하려는 마음이 수화기 너머로 전해집니다. ‘오늘은 어떤 전화가 오려나?’ 날마다 설레는 마음을 갖고 살아갑니다.
여러분! 날마다 설레는 마음을 갖고 살아갑니까?
‘오늘은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일이 있을까?’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저마다 크고 작은 아픔과 상처를 받고, 상처의 기억들을 다 갖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모님에게 받았던 아픔과 상처가 있고, 선생님에게 받았던 상처들이 있습니다. 또래 친구들, 형제들, 친척들, 이웃들에게 받았던 상처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았던 아픔과 상처들도 있습니다.
사랑에 베인 상처는 사랑으로 치유해야 합니다. 치유라는 것은 그 사람이 지닌 온전함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치유는 잃어버린 사랑을 스스로 느끼고, 사랑하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한 감정이 치유가 되어야 올바로 섬길 수가 있습니다. 내적인 아픔이 치유가 되어야 편견을 버리고, 고통이 치유되어야 자기 안에 갇혀 있는 상식을 뛰어넘을 수가 있습니다. 내적인 아픔이 치유되어야 성장하고, 상처가 치유되어야 성숙해집니다. 아픔과 상처가 치유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가장 힘들고 속상할 때, 어려울 때, 누구를 찾습니까? 누구에게 마음을 털어놓습니까?
아픔과 상처를 주는 사람이 아닌 사랑으로 치유해주는 한인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며 늘 삶 속에서 마음이 설레는 일들이 많아지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