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 “우리는 하나의 언어를 쓴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영화’라는 언어입니다(I think we use only one language, Cinema).”
봉준호 감독이 골든글로브 트로피를 안고 영어로 말했다. 그의 말마따다 영화 <기생충>은 언어와 국경의 장벽을 뛰어넘어 세계인의 마음에 가닿았다.
<기생충>이 5일(현지시각) 저녁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튼호텔에서 열린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아카데미와 더불어 미국 양대 영화상으로 일컬어지는 골든글로브에서 한국 영화가 상을 받은 건 처음이다.
봉 감독은 먼저 한국말로 “놀라운 일입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나는 외국어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어서, 통역이 여기 함께 있습니다. 이해 부탁드립니다”라고 수상 소감의 운을 뗐다. 이어 그는 “자막의 장벽, 장벽도 아니죠. 1인치 정도 되는 그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통역사가 이를 영어로 옮기자 객석에서 환호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봉 감독은 또 “오늘 페드로 알모도바르, 그리고 멋진 세계 영화 감독님들과 함께 후보에 오를 수 있어서 그 자체가 이미 영광입니다”라고 다른 후보들을 치켜세웠다. 외국어영화상 부문에는 <기생충> 외에 미국·중국의 <더 페어웰>(룰루 왕 감독), 프랑스의 <레미제라블>(래드 리 감독), 스페인의 <페인 앤 글로리>(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프랑스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셀린 시아마 감독) 등이 후보에 올랐다.
그는 이어 ‘우리 모두가 영화라는 언어로 통한다’는 의미의 영어 소감으로 마무리했다. 세계 영화 시장의 중심인 미국에서 관객들은 자막이 달린 외국어영화에 배타적인 편이다. 봉 감독은 미국 관객이 영어 아닌 언어로 된 영화에도 좀 더 마음을 열면 좋겠다는 바람을 녹여낸 것이다.
그 바람대로 <기생충>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 전 세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세계 곳곳에 만연한 자본주의와 계급 격차의 병폐에 대한 풍자는 모두의 공감을 샀다. 지난해 5월 프랑스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데 이어 전 세계 각종 영화제와 비평가협회로부터 50개 가까운 상을 받았다. 북미에서 2390만달러 넘게 벌어들였고, 세계에서 1억2600만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김형석 영화평론가는 “한국적 코드가 많은 로컬 영화에 글로벌한 메시지를 담아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봉 감독은 시상식 뒤 기자회견에서 “자본주의에 관한 영화인데, 미국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심장 같은 나라니까 논쟁적이고 뜨거운 반응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정치적인 메시지나 사회적인 주제도 있지만, 이를 관객이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전해준 배우들의 매력 때문에 좋은 반응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가 주관하는 골든글로브는 올해는 영화 14개, 티브이 11개 등 모두 25개 부문을 시상했다. <기생충>은 감독상과 각본상 후보에도 올랐으나 수상은 하지 못했다. 감독상은 <1917>의 샘 멘데스 감독에게, 각본상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에게 돌아갔다. 드라마와 뮤지컬·코미디 부문으로 나눠 시상하는 작품상은 각각 <1917>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게 주어졌다. 배우 중에선 뮤지컬·코미디 여우주연상을 받은 아콰피나(<더 페어웰>)가 눈길을 끈다. 중국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엄마가 하늘에서 보고 있을 텐데, 정말 보고 싶고 이 상을 돌리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