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호튼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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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따라 커피가 향긋하다. 이놈의 커피에 기어코 중독이 되었나 보다. 매일 미디엄 두 잔을 마시는 버릇은 결국 새벽 잠을 수없이 설치게 하는데도 아이들을 모두 학교에 보낸 후 조용히 사 마시는 레귤러 맛을 포기하지 못한다.

지금 옆에는 불청객이 오전을 같이 하고 있다. 막내 딸은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학교에 가기 싫다고 칭얼거리더니 급기야 이층에서 엄마와 실랑이를 벌였다. 결국 내려와서 “아빠, 오늘은 아파서 학교 못가요. 엄마랑 얘기 했어요.”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아파 보이지 않아 수상했다. 하루종일 데리고 다니며 일을 볼 생각을 하니 까마득하기도 해서 아이를 다그치고 추궁했다. 이만저만한 이유로 학교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말을 듣고 일단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이 과정에 의논 당사자에서 제외된 채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려 좀 씁쓸해졌다. 근데 나이가 들면서 뇌세포들이 둔해지고 있는 것일까? 장소를 옮겨 커피 한잔 마시니 잊어버리고 기분이 금새 나아지는 것이었다.

한국에 몇주 가 있을 때에 아쉬웠던 것 중 하나도 팀호튼 커피였다. 한국은 블랙, 레귤러, 더블더블, 혹은 설탕 하나 밀크 둘 등이 없고 아메리카노, 라떼, 모카, 카라멜 마끼야또 등의 이름으로 커피를 비싸게 팔고 있었는데 맛과 이름이 화려하기는 해도 이미 입이 길들여져 버린 팀호튼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스피커폰에 대고 “미디엄 레귤러!”만 외치면 싸고 따뜻하고 입에 맞는 커피를 손쉽게 손안에 쥘 수 있다. 낯선 캐나다에 처음 이민 왔을 때 아내의 다정한 선배가 처음 커피와 도넛을 사주었던 따듯한 추억이 있는 곳도 바로 팀호튼이다.

한국은 10년 전 떠나올 때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모든 곳이 정돈되어 있었다. 서울 부산 제주도를 비롯하여 전국 관광지 곳곳이 깔끔하게 단장되었고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은 마치 호텔 화장실 같았다. 강남의 지하 상가는 전체가 하나의 백화점이었다. 전철은 북으로는 춘천, 남으로는 천안까지 달렸고 광역시 중심가 빌딩은 더 높이 치솟았다. 10년 전에는 어딜 가나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던 담배꽁초 하나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나에게는 놀라운 광경들이었지만 한국에서 계속 살아 왔던 친구들은 내 감탄에 시큰둥하였다. 그러고 보니, 화려한 겉모습과 외국인으로 넘쳐나는 관광지와는 달리 우연히 들른 빌딩 속에서 일하고 있던 사람들, 저녁무렵 친구의 아파트를 들어설 때 반대로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얼굴은 왠지 좀 그늘져 보였다. 삶은 더욱 치열해졌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공정하지 못한 경쟁 때문에 좌절감이 팽배하다고 한다.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은 이미 오래 전 전설이 되어버렸다. 한국은 겉모습과 내면 모두가 점점 일본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화려함 속에서 소외되고 고립된 개인들, 어려운 인간관계에서보다는 상품 같은 것에 집착하는 ‘덕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편, 저가 항공의 발달로 이제 한국, 일본, 중국은 하나의 관광 생활권이 되고 있었다. 겨울인데도 관광지마다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온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친구들은 걸핏하면 제주도로 나들이를 다니곤 했다. 평일 제주도 비행기는 2~3만원이면 이용할 수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다시 10년이 지난다면 교통이 더 발달하고 저렴해져서 한국과 캐나다를 비롯한 전 세계가 ‘나들이 권역’이 될 것만 같다.

정치와 사회에 대한 불만 외에 서울 사람들은 중국에서 날아드는 미세먼지에 대해서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날씨 체크할 때 온도를 체크하면서 미세먼지 정도를 꼭 확인하였다. 말이 미세먼지이지 사실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미세금속인데 너무 작아서 허파에 들어가자 마자 혈액 속으로 바로 스며든다며 걱정하였다. 그런 말을 들어서였을까. 캐나다로 돌아오는 비행기 창문 아래로 눈덮인 마니토바 평원이 구름 아래로 멀리까지 투명하고 눈부시게 펼쳐져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왠지 뭉클하기까지 하였다. 국립공원에서 산마늘 한뿌리 캐지 못하게 하고 자기 집 잔디에 뿌릴 제초제마저 제한하는 캐나다인들의 자연에 대한 집착이 이제는 고맙게 느껴진다.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 곳이 있을까? 어디에 살 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런 저런 문제를 안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이민자로서의 어려움이 있는 반면 좋은 자연과 소박함이 있고, 한국에서는 급속도로 깔리고 있는 대리석과 시멘트가 부담스럽고 삶이 너무 치열한 반면, 생활이 편리하고 내 그리운 사람들이 그 속에 살고 있다. 언제 다시 볼지 몰라 바리바리 김치를 싸주고 또 배웅해주려고 천리길 인천공항까지 한걸음에 달려온 정겨운 누나, 우리 식구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마지막 날 밤에는 내 주머니에 조용히 캐나다 달러 200불을 찔러 넣어준 다정한 친구, 좁은 아파트에 다섯 식구를 몇날 밤이나 재워 준 고마운 친구가 거기에 살고 있다.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 나그네에게 그들은 어찌 그토록 친절할 수가 있었을까?

공항에서 런던으로 돌아오는 길에 팀호튼에 들러 미디엄 레귤러를 마셨다. 씁쓸한 마음이 그렇듯, 한 잔의 익숙한 커피와 함께 그리움조차 쉽사리 마음에서 잊혀진다. 이제 익숙한 것들에 대한 안도감과 함께 일상의 고단함으로 다시 돌아왔다.

어느새 막내도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 맥도날드에서 오랜만에 단둘이 마주하고 햄버거를 먹었다. 이제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나이… 이렇게 막내의 천진난만한 표정 앞에 앉아 있으니 한국 다녀온 일이 마치 몇 년 전에 있었던 일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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