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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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너무 이기적이야! 그리고 나쁜 딸이야!”

8살짜리 막내에게 쏘아붙였다. 잠깐 소파에 앉아 즐기던 예능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는데 자꾸 칭얼대길래 “5시까지만 볼 테니까 그 다음에는 네가 보고 싶은 거 봐.” 했다. 아차, 시간을 확인하지도 않고 말해버렸다. 5시 5분전. 이미 늦었다. 캐나다 태생이건만 한국말로 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화딱지가 나서 그렇게 쏘아주었다.

아침은 상쾌했건만 오후가 되니 밖은 무척이나 후덥지근하다. 9월이 된지도 거의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아마도 막바지에 다다른 여름이 가쁘게 몰아 쉬는, 올해의 마지막 열기인가 보다. 달력을 보지 않았더라면 계절 감각이 흐트러질 뻔했다.

아이들의 새학기가 다시 시작되었고 아이들 세 명은 제 각각 다른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모두 라이드가 필요한데 애들 친구 부모들과는 카풀을 미리 의논하지 못해서 아내와 이리저리 분담하느라 아침이 부산하다. 지난 6월 한참 물올랐던 도시락 준비 솜씨도 수년 전 일인 양, 아침을 맞이하는 마음가짐과 손이 그새 서툴러졌다. 새학기마다 늘 겪는 과정이지만 적응이 쉽지 않다.

둘째 아이는 학교가는 길에 “any advice?” 하길래, “뷁” 한 다음에 탐정처럼 차근차근 묻고 나서야 그 질문이 ‘9학년이 되어서 새 학교에 가니 낯설고 불안한데 어떡하면 좋아요?’ 라는 질문임을 알게 되었다. 딱히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없어서 “그냥 삶의 과정이라고 생각해라.” 말해 주었지만 속으로는 이 말이 도대체 도움이 될까 생각하고는 좀 미안했다.

초등학교에는 한국 아이들이 좀 늘었다. 성당에도 젊은 가족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토론토 지인의 말에 의하면 이민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토론토 노스욕에는 한국 젊은 층들이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 중국 젊은이들이 붐빈다고 했다. 런던으로 유입하는 가족들은 대체로 늘고 있는 것 같아서 신기했다. 막내를 픽업하기 위해 학교에서 멀리 차를 대던 나만의 한가한 자리도 이제는 너무 붐볐다.

저녁을 먹고 슬며시 지하로 내려왔다. 남자들은 대체로 ‘동굴’에 들어갔다 나와야 차분해지고 생기가 다시 돌아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영혼의 노폐물이 동굴에 조용히 혼자 있다 보면 어둠에 의해 씻겨지나 보다. 사람을 만나서 진솔하게 대화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가 않는다. 어느 결에 막내가 내려와 살며시 무릎에 앉는다. 지하 냉기가 차갑던 차에 막내의 어린 몸에서부터 따듯한 기운이 옮아온다. 우리는 그렇게 말없이 다시 화해하였다.

밤에는 필요한 문구를 사러 둘째와 같이 월마트에 갔다. 아이는 뜬금없이 “이렇게 어두운 밤에 차를 타고 가면 외로운 생각이 들어요.” 하고 말했다.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다. 저 나이 때의 마음은 마치 조개의 속살과도 같다. 겉은 단단한 껍질로 무장하고 있지만 속살은 조그마한 자극에도 쉽게 상처 받는다. 딱히 조언이 생각나지 않아서 그저 어렸을 때의 내 정서들을 들려주었다. 나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고 한 것이 둘째에게 위로가 되었을까? 아이들의 멘탈에 찾아오는 그런 문제들을 도와주기에는 내 지혜가 서글프도록 취약하다.

누구에게나 영혼의 어두운 밤이 찾아올 때가 있다고 한다. 특히 신념과 신앙에 가득 찼던 사람의 노년, 죽음 무렵에 찾아오는 그런 어둠은 유난히 짙다고들 한다. 요즘 들어 무릎과 어깨 관절을 통해서 몸이 서서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음을 자주 느낀다. 육신의 건강만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무릎과 어깨는 내 몸이 노쇠하고 있음을, 그에 따라 영혼도 그 두려운 어두움으로 점점 다가가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상기시킨다.

가을이 오기도 전에 벌써 가을을 느끼나 보다. 열매는 없고 낙엽만이 쌓이는 나의 가을을. 그래도 감정이입을 심하게 할 수 있는 자녀들이 있어 다행이다. 때로는 감정이입이 과도하다 싶기도 하지만 죽음을 앞두고 자녀만큼 위로가 되는 것도 드물지 싶다. 적어도 나 같은 평범한 남자에게는 말이다. 문득 수도자들이 측은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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