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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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몇 초 동안 주위가 빙빙 돌고 어지러워서 털썩 주저 앉았다. 날씨는 청명한데 매사에 의욕이 없던 차에 갑작스럽게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 달팽이관에 염증이 생긴 것일까? 빈혈일까? 기립성 저혈압? 그러나 아내는 커피로 인한 탈수(dehydration) 현상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최근에 수면장애를 겪던 터였다. 피로감과 탈수현상이 겹쳤는지도 모른다. 이참에 커피를 한번 끊어보기로 했다.

알고 보면 커피에는 좋은 점이 아주 많다. 우선, 커피에는 몸을 맑게 하는 물질(항산화 성분)이 포함되어 암세포 발생을 억제하고, 비타민(B종류)과 미네랄(망간 마그네슘 칼륨)이 풍부하게 들어있다고 한다. 특히 카페인은 뇌의 활동을 돕고 파킨슨, 알츠하이머, 당뇨 등의 병을 억제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으며 신진대사를 촉진(위산분비, 배뇨 등)해준다. 그러나 커피는 무슨 건강식품이 아니라 사실 그냥 기호식품일 뿐이다. 오히려 습관적이고 지속적으로 카페인을 오랫동안 섭취하는 경우에는 불면증과 불안에 시달릴 수 있고, 그리고 카페인의 반짝 효과가 사라진 다음에는 숙면하지 못해오던 상태와 겹쳐서 피로를 더 느끼게 된다. 또 카페인은 소화를 돕지만 오히려 위장이 약한 사람에게는 위산과다로 속 쓰림을 유발하고 식도 역류로 인해 식도염이 생길 수 있다. 한편, 심장이 예민한 사람에게는 심장 두근거림이나 부정맥을 유발한다. 또 카페인의 작용이 콩팥에 오랫동안 적용되면 탈수증세가 생긴다.

술도 조금씩 마시면 건강에 좋다고들 하지만 체질에 따라 다르듯, 커피도 사람에 따라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은 경우가 있나 보다. 장점은 적당량을 섭취할 경우에만 빛나는 것일 테다. 그런데 술을 어디 딱 한잔만 마시게 되나? 커피 역시 카페인이라는 중독성 성분 때문에 적당량 섭취가 어렵고 먹는 순간부터 점점 양이 늘어 결국 커피 애호가 되고 과다섭취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제는 몇십년 간의 우정을 접을 때가 되었다.

그런데 커피로 인한 탈수증세로 인해서 무엇보다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입냄새이다. 커피에 섞인 크림이나 설탕이 잇몸 질환을 더 부추기기 때문일 수도 있고 위산 역류로 인한 식도염 때문일 수도 있다. 이 냄새는 본인이 전혀 느끼지 못하고 가까이 있던 남들만이 느끼므로 난처한 경험을 여러 번 하게 만든다. 대화하는 상대방이 바람결에 문득문득 이 냄새를 느끼는데도 내가 무안할까봐 모르는 척하고 말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회의석상에서 상급자가 다른 사람과 짜고 “자네 입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치과에 한번 가보지 그래?” 하고 에둘러 말함으로써 같이 참석한 내가 눈치채도록 유도하기도 하고, 혹은 잔인한 상급자의 경우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 얼굴을 찡그리고 코를 막으며 “사무실 어디서 이런 악취가 나지?” 하고 심술궂게 굴기도 한다. 그래서 밖에서 이런 굴욕적인 상황으로 치닫기 전에 안에서 대놓고 “당신 입냄새 나”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하다. 여보 땡큐.

어쩌면 이런 노골적인 지적은 오른뺨을 맞을 때와 비슷하다. 기분은 더럽고 수치스럽지만 뼈를 다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졸음 운전할 때 뺨을 맞을 때처럼 정신을 차리는데 도움이 된다. 누군가가 진정으로 나를 증오하는 원수라면 차라리 주먹으로 치거나 몽둥이로 때리거나 칼로 찌를망정 뺨 정도 때리는 데서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보, 나 혹시 다른 거는 없어?” 하고 왼뺨도 좀 때려줘 하며 들이 내밀 용기가 생긴다. 창피하지만 노골적인 피드백이 고맙다.

인격에도 가끔 스치는 바람결에 입냄새가 나는 사람이 있다. 누가 말해 줄 수 있을까? 친구도, 가족도, 위의 경우처럼 에둘러서라도 암시해주거나 노골적이고 잔인하게 말하는 상급자도 없다면 그의 처지는 참으로 불행하다. 뺨 정도에서 그칠 기회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배가 산으로 가니 급마무리 해야겠다. 다행히도 어지럼증은 조금씩 누그러지더니 일주일정도 지나니 증세가 거의 없어졌다. 위장의 부대낌도 줄어들었고 새벽3시에 눈떠 한참을 자지 못하는 일도 눈에띄게 줄어들었다. 어느 의료인에 따르면 커피에 있는 물은 수분섭취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커피를 끊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이상의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 물은 입냄새도 없애준다. 인격에 나는 입냄새도 물이 씻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례가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아서 요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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