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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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결의란 장비(혹은 유비)의 집 뒤뜰 복숭아 밭에서 검은 소와 흰 말과 지전(紙錢) 등 제물을 차려 놓고 천지(天地)에 제(祭)를 지내어 의형제를 맺은 것을 두고 말하는데 그 대목을 보면 그들은 이렇게 읊는다.

“유비, 관우, 장비가 비록 성은 다르오나 이미 의를 맺어 형제가 되었으니, 마음과 힘을 합해 곤란한 사람들을 도와 위로는 나라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편안케 하려 하니, 한 해 한 달 한 날에 태어나지는 않았어도 한 해 한 달 한 날에 죽기를 원하나이다. 하늘과 땅의 신령께서는 굽어 살펴 의리를 저버리고 은혜를 잊는 자가 있다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죽이소서.”

‘계약’에는 영어로 두 종류가 있는데 contract와 covenant가 바로 그것이다. 둘 다 뭔가 합의를 한다는 뜻이지만, contract는 약속을 주고 받는 것이고 covenant는 거기에 더하여 맹세까지 주고 받는다는 점에서 좀 다르다. 맹세도 그냥 인간적인 맹세(swear)가 아니라 신성한 존재(천지, 신령 등)를 증인으로 불러들여 맹세(oath)를 한다. 서양에서는 법정에서 증인대에 선 사람들은 성경에 손을 얹고 “I promise to tell the whole truth and nothing but the truth, so help me God.”라고 맹세(oath)는 것을 볼 수 있다. 재판의 경우처럼 주로 생명이 걸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맹세(oath)를 시키곤 한다. 의사(히포크라테스 선서), 경찰, 군인, 선출된 정치인, 사제 등이다. 이들이 만약 주어진 힘과 권력을 분별없이 휘두를 경우 사람의 생명이 위협을 받기 때문에 인간적인 맹세(swear)만으로는 스스로도 또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안심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보다 높은 권위에 의존하고 싶어한다.

contract와 covenant는 계약의 내용에 있어서도 좀 다르다. contract는 재산가치(property)를, covenant는 인격(persons)을 교환한다. ‘나는 당신의 것이고 당신은 나의 것입니다’ 하는 식으로 서로의 존재를 교환하는 것이다. 그래서 covenant는 ‘생명’, ‘피’가 주는 이미지와 아주 깊은 관련이 있다. covenant로 맺어진 대표적인 관계는 결혼, 입양, 의형제 등이 있다. 자연적으로는 혈연관계가 아니지만 계약(covenant)을 통해 ‘같은 피’ ‘같은 몸’을 이룬다. 고대사회에서는 이러한 관계를 맺을 때의 의식에서 축복과 함께 배반할 때의 저주도 같이 포함한다. 마치 하나의 몸이 갈라질 때 피가 쏟아져 죽게 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배반한 상대방에게는 ‘피의 저주’ 같은 것이 따를 것임을 암시한다.

도원결의는 대표적인 covenant의 예이다. 하늘과 땅의 신령에게 맹세를 하였고, 이를 배반할 경우 죽음이 따를 수도 있다는 점을 각자가 각오하고 있다. 성경에도 보면 신과 아브라함이 계약(covenant)을 맺는 장면에서 비슷한 의식이 등장한다. 아브라함은 몇몇 짐승들을 아래 위로 반을 자른다. 피가 흐르는 가운데 신을 상징하는 불과 연기가 그 가운데를 지나감으로써 계약의 한쪽 당사자임을 확인한다. 계약은 축복과 함께 그것을 위반할 때의 저주(생명이 피 흘리며 반으로 쪼개진다)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집트 탈출 후 신과 이스라엘 민족이 계약을 맺을 때도 비슷하다. 신은 이스라엘 민족을 맏아들로 삼고 그들은 십계명을 지키는 조건으로 신의 백성이 된다. 이때 모세는 제단에서 희생된 짐승의 피를 받아 제단(신의 현존)에도 뿌리고 백성에게도 뿌리며 ‘이것은 하느님과 맺는 (쌍방간의) 계약의 피다’라고 선언한다. 계약을 어길 때에는 생명을 잃는 것과 같은 고통이 따름을 보여준다. 예수 역시 ‘이 잔은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너희가 받아 마셔라.’ 하기도 하였다. 성경을 ‘구약’(Old covenant), ‘신약’(New covenant)라고 표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둔 곳에 생활하시는 형님들의 세계, 혹은 심지어 아이들에게서조차 이와 비슷한 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각자 피를 내어 한 컵에 떨어뜨린 다음 둘이 서로 나누어 마심으로써 가족 혹은 형제 관계를 맺는다. 한 몸이 되는 것이며 배반할 때 피를 부르게 될 것이라는 엄숙한 맹세이다.

최근에 어느 선하신 분의 호의로 개(시추?) 한 마리를 입양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그 개와 나는 contract 관계 정도에 머무를 것 같다. 똥오줌 잘 가리고 수발하는 것이 쉬운 한에서만 귀여워해주는 관계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그와 노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리고 그를 잃었을 때 아이들의 가슴이 피흘릴 것을 상상하노라면, 아이들과 그는 의식을 치르지 않았어도 이미 covenant 관계가 형성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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