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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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에 앉은 내 눈은 유리창문 너머로 보이는 YMCA 풀장을 향했다. 월요일이다. 회사를 가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풀장에 한가롭게 잠겨있다. 레인에는 스치는 물결의 감촉을 즐기며 물고기처럼 천천히 왔다갔다하는 사람들도 몇몇 보인다. 도서관을 닫은 날이라 그런지 주위가 한산한 편이다.

아침에 아내는 “일하러 가기 싫다”하면서 우울한 얼굴로 집을 나섰다. 직장에서 동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다. 한국말로 했으면 한판 쏘아붙이거나 생각이 같은 사람들과 같이 집단행동이라도 불사했을 텐데, 영어 잘하는 ‘마귀 같은 년’을 상대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고 속으로 울화만 쌓이는 것 같았다. 내가 감당했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니 자책이 쌓인다. 요즘 TV에 나오는 궁상민(이상민)의 처지처럼 나도 아내에게 큰 부채를 안고 사는 것만 같다. 그러면서도 ‘드룹(방귀소리)’한 놈이 성낸다고, 평소 아내에게 짜증내기를 즐겨하니 이런 나를 견디는 아내가 신기하고 고맙기만 하다.

어떤 착한 부부가 티격태격한 다음에 마음이 풀리지 않은 채로 어떤 모임에 왔는데, 그 아내는 근처에 있는 남편에게 이런저런 잔일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 남편은 가까이 가서 사과도 하고 군소리 없이 아내가 시키는 일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아내는 미담이라며 웃으면서 나에게 그 장면을 전해주었다. 흔한 에피소드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놀라운 이야기였다. 나는 늘 ‘드룹한 놈이 성내는’ 타입이었고, 아내가 뭘 시키면 ‘지는 도대체 뭐하길래?’하며 속으로 은근히 따지며 불만스러워하는 습성이 있다. 여자가 ‘추워요’ 하면 ‘나도 추워’하는 남자라고 아내는 늘 핀잔이었다. 결혼 초반에 비해서는 좋아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 남편처럼 마음을 비우고 아내에게 순한 양처럼 되려면 아직도 구만리이다. 얼마 전에 식당에서 두 어른과 식사를 할 때 테이블 위에 놓인 간장종지를 보고 “내 마음을 보는 것 같네요. 이렇게 작고, 색깔은 어둡고……” 하며 농담하듯 건넸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그런 것 같다.

누구나 많건 적건 부채를 안고 살아간다. 그 중에 ‘마음의 부채’는 꼭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내에 대한 빚도 많고 창조주에게 진 빚도 크다. 그러나, 당장 한꺼번에 갚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고 한편으로는 바람직해 보이지도 않는다. ‘마음의 부채’는 다함을 모르기 때문이다. ‘금전적인 부채’의 경우에는 끝이 보인다 한들 역시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온통 빚을 갚는 데에만 몰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생에는 우리가 채우고 돌보아야 할 다른 여백이 있기 때문이다. 부채를 줄이는 것은 몸무게를 줄이는 것과 같아서, 무리하게 체중을 감량하려다가는 오히려 몸을 해치기가 쉽듯이, 삶의 모든 노력을 부채 갚는 데에만 쏟아붓다 보면 더 소중한 무엇인가를 반드시 놓치게 된다. ‘궁상민’조차도 예전처럼 사업으로 한방에 빛을 갚으려 하지 않고 대신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충실하며 조금씩 10년 넘게 아직도 빚을 갚고 있다. 그러는 중에도 지인들과 만나 좋은 것을 먹기도 하고 좋은 곳에 여행을 가기도 한다.

우리는 흔히 ‘돈’을 현대사회의 우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부채 역시 돈이라는 것은 까맣게 잊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세대는 자라온 환경이 그래서 그런지 빚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서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부채를 빨리 없애려고 온통 거기에 매달리게 되는데 이를 ‘우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미덕’이라고만 생각한다. 우리 삶은 렌트 인생을 벗어나거나 빚을 하루빨리 갚거나 가산을 늘이기 위한 몸부림으로 가득하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생의 가치관을 여기에 묶어둔다는 것이 문제이다. 빈곤한 것보다는 아무래도 풍요한 편이 좋겠지만 거기에만 몰두하느라 주위가 온통 어둠으로 덮여있다는 것은 불행하다. 어느 정도 살림이 피고 나면 평화를 얻고 자신과 이웃을 돌아보게 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평생 돈 갚으며 궁하게 살아온 탓에 돈을 쓰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시나 찾아올지 모르는 불행에 대비해서 지금까지 쭉 해오던 대로 각박하게 살며 계속 가산만을 늘인다.

우리는 늘 쫓기거나 허덕이며 살고 있다. 빨리 렌트를 벗어나야지, 이제 모기지를 빨리 없애야지, 이제 집을 수리해야지, 이제 주차장을 늘려야지…… 우리가 채워야 할 인생의 여백은 이렇게 빚에 대한 강박으로 채워진다. 우리는 ‘궁상민’씨를 배울 필요가 있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왔거나 아직도 살림이 피지 않은 우리 역시, 고단한 가운데서도 틈틈이 자신의 영혼을 보살피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내 집 모기지를 완전히 갚을 때까지 쓰지도 즐기지도 배우지도 베풀지도 않는 생활은 얼마나 메마른가!

사람들은 외롭고 고되고 허무한 일상에서 위로와 격려와 작은 평화를 찾아 헤매고 있다. 그것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찾아온 곳마저, 빚을 떠안은 마을회관 같이 부채상환에만 골몰하며 ‘잘살기 운동’에만 동원한다면 얼마나 실망스러울까? 점점 그곳은 위로 받을 일이 없는 사람들만 남아서 동호회처럼 친목만을 추구하는 곳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기 YMCA보다 못하게 된다. 여기에는 최소한 일상을 벗어나 유유히 쉬어갈 수 있는 서비스와 친절이 있다. 애초에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추구할 것은 부채를 갚는 일이 아니라, 어쩌면 마음의 여백을 지금 당장 돌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부채를 갚는 동안 잊혀질 뿐 결코 채워지는 일이 없다.

내게는 금전적인 부채 이외에도 마음의 부채가 여럿 있다. 금전이건 아니건 초조한 마음에 한방으로 다 갚으려 하지 말고, 간장종지 같은 그릇을 늘이고 탁한 마음을 정화하여 한결 같은 마음으로 조금씩 평생에 걸쳐 이것들을 갚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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