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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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참석했던 피정(retreat)에서 우연히 어떤 사람의 성장과정을 듣게 되었다. 몇분도 채 되지 않는 그의 담담한 회고에 내 가슴은 먹먹했다. 사람이 견딜 수 있는 불행은 어디까지일까? 나 자신이 유년시절 겪었던 불행이 잠시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들과는 차마 비교할 수 조차 없는 끔찍한 성장기를 지나고도 이렇듯 멀쩡하게, 아니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게 내 앞에 앉아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그저 놀랍기만 했다.

20대 초반까지 나는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서울에 상경해서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상처와 함께 자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도, 그리고 그들이 중병이었다면 내가 겪은 어려움들은 그저 찰과상 정도였을 뿐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신은 사람의 불행을 즐기려는 것일까? 에덴 동산에서 뭔가 착오가 생겼을 때 왜 즉시 바로잡지 않고 지금까지 이렇게 오래 끌어왔는지가 늘 궁금했었다. 그럴 의지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 즉시 바로잡든지, 아니면 모조리 폐기처분하고 리부팅을 하든지 했어야 했다. 결국 역사 속에서 뭔가 작업을 했다고 하지만 그것마저도 너무 더딘 과정이었다. 신은 무능하든지 아니면 마음이 꼬였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세상은 ‘자기자신’과 ‘물질’이 최고선인 세상이다. 심지어 그 둘이 가장 큰 우상이라고 외치는 설교가들조차도 자신의 뜻을 펼침에 있어 돈에 극도로 의지하고, 또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온 습관의 거대한 중력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이 거대한 두 바퀴로 세상은 굴러가고 그 수레바퀴 아래 사람들이 수없이 깔려 고통받고 있다.

신은 이 세상을 왜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내가 어찌 알 수 있겠냐마는 어쩌면 지난 역사 속에서 신을 지극히 사랑했던 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아마 놓치기 아까웠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들은 불행 속에서도 꽃처럼 피어났다. 내가 그 성인 중에 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어쨌든 그들 덕택에 뭔가 미루어지고 그래서 지금 현재 여기 내가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한편으로 참 다행스럽다. 그 덕에 아내를 만나고 그 덕에 아이들과 만날 수 있었다.

성경에는 소돔이 망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브라함은 소돔을 멸망시킬지 마음을 정하려는 하느님과 ‘네고’(협상)를 시도한다. 마침내, 10명의 ‘의로운 사람들’이 소돔에 있다면 소돔은 유지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아낸다. 그러나 결국 그 10명이 없어서 소돔은 멸망하게 된다. 유태인들은 전통적으로 12부족이어서 그런지 각 부족당 한 사람씩 12명의 의인만 있다면 이 세상은 멸망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다. 현대사회가 망하지 않고 아직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그 10명 혹은 12명, 아니면 각 민족에서 한 사람씩, 신에게 죽도록 사랑을 받고 있는 그들이 계속 이 세상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나는 피정 때 만난 그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 하느님이 죽도록 사랑하여 기다린 사람이라 생각한다. 이 세상의 온갖 왜곡에도 불구하고 신이 직접 물리적으로 개입해서 싸그리 정리하지 않고 그 오랜 세월을 기다린 이유…… 어쩌면 오직 그 사람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어쩌면 천지창조 자체가 오직 그를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에게 마음 속으로 감사하고, 그 사람과 같지 않은 수 많은 이들에게 점점 너그러워진다.

나보다 더 불행했던 사람을 보고 위로를 느끼는 것이 양심적으로 올바른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 때 나는 그랬다. 20대에 나를 스쳤던 사람들의 불행했던 과거를 접했을 때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마음을 열어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다는 것은 그래서 고마운 일이다. 본인에게는 남한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과거를 어느 정도 극복했다는 좋은 신호일 수도 있을 것이고, 듣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처지를 위로 받고 감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상처를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데 그는 어떻게 치유 받았는지 좀 궁금했지만 더 이상 캐지 않았다. 어쩌면 그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순간에 누군가에 의해 자신이 죽도록 사랑 받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외에는 다른 치유방법이 없으니까.

우리는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공허함을 가지고 있다. 어떤 물질로도, 어떤 자존심으로도 채울 수 없다. 그것은 밖에 있는 누군가에게서 죽도록 사랑받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운 좋게 사랑이 많은 배우자를 만나서 결핍을 채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설사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희망은 늘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은 공평하고 정의롭다고 했다. 몇몇 사람들만을 위하여 그 긴 세월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어쩌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을 기다렸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똑 같은 심정으로 나 역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누군가 나를 죽도록 사랑하는 이를 이미 보내지는 않았을까? 그 사람처럼 나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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