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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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식탁에서 어린 조카가 입에서 먹다가 뱉은 것을 형님이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입으로 가져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참 거시기 하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아빠가 되었을 때도 저럴 수 있을까 궁금했었다. 결국 나는 형님보다 비위가 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 아들과의 관계는 다른 집보다 더 데면데면했던 것 같다. 아직까지도 지난날 아들과의 관계가 좋았는지 어땠는지 막연하기만 하다. 무엇을 어떻게 좀더 해주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과, 혹시 나로 인해 마음에 어떤 멍이 생긴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있다.

미처 뒤를 차분히 돌아볼 겨를도 없이 그렇게 아들은 다른 도시의 대학으로 이사를 갔다. 조금 이르다 싶은 독립에 아들은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던 것일까? 남은 가족 또한 이런 식의 이별이 갑작스럽고 어리둥절했다. 전날 저녁에는 온 가족이 함께 미사를 하고, 식사도 하고, 밤에 아들은 동생들과 지난 날을 화해했으며, 아침에는 이들과 가벼운 포옹을 했다. 그리고 헤어졌다. 짐을 싣고서 새로운 도시를 향해 국도를 타고 갔다. 아름답고도 낯선 길이었다. 전원 풍경이 주는 편안함과, 미지의 길이 주는 긴장감이 묘하게 섞여있는 여정이었다. 그리고 어느 새,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대학 기숙사에 도착해버렸다.

요즘은 핵가족 시대라 그런지 아무리 부자지간이라도 서로 각자의 인생을 사는 느낌이지만, 예전의 아버지들은 아들을 마치 자신의 얼굴, 분신, 미니미(mini-me)로 여겼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집안의 성씨(family name)가 죽기까지 그 사람의 최우선적인 정체성이었고, 하나의 집안(가문)은 마치 하나의 몸과도 같았다. 그래서 한 사람의 영광은 집안 모두의 영광이요 한 사람의 치욕은 가문 모두의 치욕이었다. 그 중에 누가 대역죄라도 지을라치면 삼족 정도는 멸해야 할 정도로 집안은 하나의 몸, 운명 공동체였지 싶다. 마치 줄기와 가지가 구분되지 않는 포도나무처럼, 가지가 맺는 열매는 곧 줄기가 맺는 열매였다.

성경을 보면, 단순히 같은 혈육이라거나 DNA를 상속받았다 해서 하나의 집안, 하나의 몸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신과의 약속’을 상속받은 라인이 한 몸을 이룬다. 그런데 이 가문의 인물들이 겪는 삶의 궤적은 아주 흡사해서 마치 조상의 삶이 자손의 삶을 예언이라도 한 것처럼 신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구약의 구체적 인물들이 겪는 행적은 마치 한 몸에서 나오는 여러 그림자 같다는 인상, 마치 후대 자손에게 실제로 일어날 일들이 미리 그림자로 숨어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예를들면, 신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산으로 데리고 가서 마치 가축인양 돌제단 위에서 태워 바치라고 이르는 장면이 있다.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1), 네가 사랑하는 아들(2), 너의 하나뿐인 아들(3)”이라고 삼중으로 언급하는 것을 보면 늘그막에 얻은 이사악이 아브라함에게 얼마나 귀한 아들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아버지가 아들을 바치러 올라간 그 산(모리야)은 놀랍게도 훗날 그의 후손 예수가 실제로 로마군에게 처형당한 장소였다. 또한 아들은 자신을 죽음으로 이끌 나무를 산에 지고 올라갈 만큼 건장한 나이였고 힘으로 늙은 아버지를 거역할 수도 있었으나 스스로 아버지에게 순종했다. 이사악은 다시 살았으며 “양은 하느님이 손수 마련하실 것이다”라는 예언처럼 들리는 말을 아버지에게서 듣게 된다. 그 가문의 시작과 끝(?)은 이토록 닮아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의 부자관계는 별다른 영광이나 수치나 테스트 없이 18년을 지내왔다. 아쉽게도 나는 옛적 아버지와 아들이 느끼던 그 강한 유대감(bond)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들을 제물로 바치러 올라갈 때의 그 참담하고 비통한 심정도 그저 어렴풋하게만 짐작할 뿐이고, 그 테스트를 통과함으로써 생긴 열매가 그래서 얼마나 귀한 것이지도 잘 헤아리지 못한다.

기숙사는 십 몇 층짜리 콘도 모양의 새 건물이었다. 전망도 좋고 시설도 깔끔해서 좋은 출발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같은 층에서 어렸을 때 토론토에서 알던 친구도 만났다. 묘한 인연이었다. 그 아이를 데려온 아버지는 못 보던 사이 수척해진 느낌이었다. 세 아이를 혼자서 양육하고 있는 이 시대의 다른 아버지였다. 뭔가 축하와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전할 겨를도 없이 우리는 다시 헤어지게 되었다. 그 아버지는 아들과 끈끈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차를 바꿔야 할지 말지를 의논했다. 5인가족이라 미니밴을 이용했었는데, 이제 식구가 네 명으로 줄어드니 생활상으로 여러 변화를 겪을 것 같다. 단 한 명이 줄었을 뿐인데도, 그리고 늘 자기 방에서 박혀서 잘 보이지도 않던 녀석이었는데도 집에 돌아오니 뭔가 허전하다. 사람의 자아라는 것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 위에 뿌려져 있듯 그렇게 우리 부자의 관계도 어쩌면 아직도 여전히 진행 중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직 희망은 있다.

잘 자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아들은 친구로부터 선물 받은 이모티콘과 함께 ‘사랑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낯설었다. 아마 아들도 ‘의지적으로’ 남긴 말이었을 거라 짐작한다. 너무 늦지 않았다면, 나도 의지적으로 그 아이에게 더 다가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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