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2박3일 일정으로 토론토에 출장을 갔다. 그렇게 혼자 가족을 떠나는 것이 처음이라 서먹해하고 서운해하는 아내에게 ‘운전 조심하라’라거나 ‘토론토 간 김에 일이 끝나면 부모님과 더 머물다 오라’고 하는 대신, 나는 ‘신문을 대신 픽업해 달라. 배달을 해야하니 빨리 와라’ 했다.
“당신은 글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야.” 내가 이기적으로 굴거나 매정할 때 아내는 이렇게 핀잔을 주곤 한다. 하긴, 20대 때에는 내 글과 평소 행동이 너무 달라서 친구들마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 혼란스러워 했었다. 결국 글은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어느 날 매일 쓰던 일기마저 씁쓸히 그만두었다. 지금 와서는, ‘위선적’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인격에 기스를 주는 그런 아내의 평가를 듣더라도 그다지 발끈하지 않게 되었다.
아내가 떠난 날은 눈인듯 비인듯한 것으로 날이 흐렸다. 밤이 되자 성당에서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음날 아이들 도시락 거리를 장만하려고 집근처 식료품점에 잠시 들렀다. 주차장에서 짐을 싣고 다시 출발을 하려는데 차에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며칠 전에도 집앞에서 그런적이 있었지만 몇시간 후에 다시 시동이 걸렸었다. 짐만 들고 차를 놔둔채 한참을 걸어 집으로 갔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새벽에 다시 걸어왔다. 차는 넓은 주차장에 혼자 쓸쓸히 놓여있었다. 조마조마하며 시동을 걸었다. 이번에는 시동이 다시 걸리지 않았다.
날이 밝아 이웃의 도움으로 점퍼를 연결해서 밧데리를 소생시켜 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밧데리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결국 견인차를 불러 공업소에 가기로 했다. 내가 집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이, 견인차가 차만 싣고 그냥 가는 바람에 나는 또 다른 지인의 도움으로 공업소까지 가야했다. 다행히 둘째아이를 알바하는 곳에 데려다 주어야하는 시간 전에 차를 고칠 수 있었다. 여러 모로 아내가 아쉬운 날이었다.
전날 밤에는, 아이들에게 차가 고장났으니 (새벽에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아침에 걸어서 학교에 가야할지도 모른다고 미리 말해두었었다. 아침이 되니 깨우지 않았는데도 둘 다 30분씩 일찍 일어났다. 특히 맨날 늦잠자던 막내가 스스로 벌떡 일어나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어려운 환경이 닥치면 평소에 잠자던 생존능력이 발동 했나보다. 둘째는 자기 학교까지 2Km를 걸어갔다. 멀다면 멀고 짧다면 짧은 거리, 내가 중학교 때까지 9년을 걸어서 통학하던 거리였다. 기댈 수 있는 다른 옵션이 없었던 나에게는 그리 먼 길이 아니었다. 그러나, 차로 갈 수 있는 길을 추운 날 굳이 걸어가야했던 둘째에게는 아마도 먼 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평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였다.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아내에게서 ‘굿모닝’ 메세지가 왔다. 나는 당신도 잘 잤느냐는 메시지 정도로만 답했다. 굳이 여기서 일어난 일을 미주알 고주알 알렸다가는 거기 일에 지장이 있을까 염려스러웠다. 생각해보니, 대학을 서울에서 다닐 때 우리 어머니가 그랬었다. 먼데 있는 자녀들에게 우리 어머니는 다른 것은 몰라도 자신이 아픈 소식만은 전하지 않았었다. 지난 밤 겪은 일은 그에 비하면 가지에 스치는 봄바람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밤이 되자 아내와 통화를 했다. 아내는 일이 끝내고 부모님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괜스레 아내에게 그 사이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으며 투덜거렸다. 내 어머니에 비하면 그 아들은 한참이나 하수인 셈이다.
사건 사고와 가사일과 아이들 라이드와 내 일과 성당 일 등으로 어지러운 며칠이었다. 조용한 시간이 되니, 런닝머신을 한참 뛰다가 갑자기 멈추고 착지했을 때처럼 세상이 빙빙 도는 느낌이었다. 세상은 나와 상관없이 고요하지만 내 마음이 날뛴 바람에 그렇게 어지러웠나 보다. 제자가 ‘가지가 움직이는 것입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스승이 ‘가지도 바람도 아니요 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니라’ 했다던 일화가 문득 떠올랐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삶의 방식 안에서 사건 사고로 뛰어다니며 살아가는 우리는, 고요한 세계에 접근할수록 어지러워지고 그래서 정지해 있는 저 너머의 세계는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점점 참존재의 세계를 추구하며 거기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오히려 지금의 세상이 오히려 비현실적이고 어지러워지리라. 나의 글은 정지해 있는 저 너머 ‘참 세계’를 추구하고 있었지만 결국 거기에 정착하지 못하고 늘 바람으로 일렁이는 세상에서 이날까지 빙빙돌며 살아왔다. 이 세상이 너무 익숙해져서 어지럽지도 않았고 그래서 바쁜 삶이 참이라고 생각해왔다.
지금와서 보면 아내가 없던 날 겪은 일들은 다소간의 불편함 외에는 사실 내 존재에 어떠한 생채기도 내지 않았지만 내 안에 일렁이는 바람때문에 지레 소란을 피운 꼴이 되었다. 그러고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어떠한 폭풍도 어쩌면 마음의 찻잔에서만 일어나는 작은 ‘일렁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내가 돌아왔다. 철없이 투덜거리는 사위를 위해 장모님은 아내 편에 음식을 싸보내셨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내가 없다면 나는, 춥고 흐린 겨울 새벽 넓은 주차장에 덩그러니 고장나있는 낡은 차 신세가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아내는 글과 행동이 다른 나에게 관대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생각이 그러다 보면 마음과 행동도 언젠가는 바뀌지 않겠냐며…. 어쩌면 오로지 달리기만 하는 생활에서 종종 멈추고 고요한 세계에 자주 착지하다 보면 점점 어지럼증도 덜하고 미안함도 덜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