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가 어떤 피아노 곡을 무심코 연습하는데 내게는 너무 반가운 곡이었다. 둘째도 그 곡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너를 기억해”라는 드라마 OST였다. 이소라의 목소리라고 알고 있었는데 아내는 아니라고 했다. 누구의 목소리건 너무 감미로웠다.
드라마에서처럼 나에게도 어린 시절 헤어진 형이 있다. 8살 터울이었는데 병원에 한두 달 입원하더니 어느 날 학교에 갔다 왔을 때 이웃집 누군가가 ‘네 형이 죽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때가 초등학교 1학년쯤 나이였던 것 같다. 나는 울지 않았다. 그 뒤로도 지금까지 아주 오랫동안.
성장하면서 나는 늘 가족들과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데에 서툴고 힘들었다. 아무도 없이 나 혼자 있는 집에 전화벨이 울리는 것조차 그렇게도 부담스러웠다. 얼굴 없는 누군가와 말을 섞어야 한다는 것이 힘들었던 것이다. 그냥 타고나기로 내성적인 성격 탓이거니 하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성장과정 어디쯤에서 그 무렵에 마땅히 받아야 할 정상적인 애정에 노출되지 못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다 어느 날 밤 지하실 어두운 방에서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중에 문득 어린 시절 죽은 형이 떠올랐다. 갑자기 서러움이 복받쳤다. 그리고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40년이 지나는 동안 한번도 형 때문에 운 적이 없었다. 이 날은 달랐다.
삶이 고단했던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적시에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 형성이 어려웠나 보다 하고 생각했었다. 형을 잃었던 기억은 거짓말처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시절 그를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그 또한 나에게 얼마나 따듯했는지를.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숨어있었을까. 상실의 충격이 클수록 무의식 속으로 밀어버리기도 하나보다. 그 때는 어렸으니까 그럴 수도 있을 테지. 그러나 뜻하지 않은 슬픔을 갑자기 겪었을 때 마땅히 거쳐야 할 과정을 겪지 않으면 결국 나중에 다른 엉뚱한 곳에서 이유 모를 부작용을 겪게 된다.
어린 시절 그는 나의 영웅이자 애정의 둥지였다. 지금까지의 모든 불행이 단지 어린 나이에 그를 잃었던 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마음 속에 남아 있는 모든 질곡들을 ‘방생’할 정도의 지혜는 생겼다. 다만, 방생하고 싶어도 그 물고기가 저 깊은 바닥에 아직 살아있는 줄도 몰랐던 것이 미안하고 눈물겨울 뿐이다. 커서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실컷 울었다. 이미 넓은 곳으로 보내드렸다. 그러나 어릴 때 형이 죽었을 때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줄 몰라서 울지를 못했다. 너무도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밤 갑자기 당시에 겪어야 했을 과정을 겪고 있다.
제발 어떤 식으로든 형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기를, 그래서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리석은 것일까. 그토록 어리석은 마음에 이토록 절실하게 지금 매달리는 것일까. 살면서 고단한 몸이 짐스러울 때가 수없이 많지만 오늘은 이 귀를 가지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 손으로 그의 손을 부여잡고 매달리고 싶다. 그리고 그토록 오랫동안 잊어왔음을 밤새도록 사과하고 싶다.
드라마 OST를 몇 번이고 계속 듣는다. ‘날 바라봐줘. 날 기억해줘, 나를’. 형이 하고 싶은 말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더 하고 싶은 말일까. 나는 알지 못한다. 어딘가에 있을 형이 나를 잊지 않았기를, 내가 형을 잊지 않기를, 그리고 다시 만나 서로 껴안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