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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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일찍 숙소를 나섰다.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봄날을 가득 담은 공기가 얼굴을 스친다. 춥지는 않았다. 다행히 시외버스 주차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비는 그쳤다. 하루 종일 흐리겠거니 했지만 금새 파란 하늘이 군데군데 비친다. 바닷가라 그런지 날씨가 금새 바뀌었다. 바람이 시원하다.

버스는 자그레브로 향했다. 여기 두브로브니크에서 10시간이나 걸린다. 직행으로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텐데 이곳 저곳 골짜기의 작은 읍들을 들르는 탓에 시간이 두 배로 걸렸다. 올 때는 이국적인 풍경이 나름 신기해서 지루한 줄도 몰랐는데 이제 돌아가려니 아찔하기만 했다. 그나마 새벽에 나선 터라 버스 안에서 불편하나마 잠을 많이 청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크로아티아는 1991년부터 4년간의 전쟁 끝에 독립 국가가 되었다고 한다. 2000년부터 10년간은 도로를 정비하는 데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데 덕분에 관광업이 활발해졌다. 바위 산이 많은 험한 지형이라 고속도로와 국도를 타고 가는 곳곳이 절경이다. 길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때론 지루하고 때론 신기한 풍광이 차창 밖으로 스친다. 들판은 듬성듬성 허리 정도 밖에 자라지 못한 나무들로 덮여 있고 그 사이로 바위와 돌이 보였다. 마을은 완만한 산의 중턱을 깎아 군데군데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다. 곡식을 기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척박한 곳인 것 같은데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버스가 휴게소에 들어섰다. 장시간의 여정이라 자주 쉬어 갔다. 휴게소에서는 오래 전에 좋아했던 핑크플로이드의 70년대 노래가 들려온다. 가사 자체는 씁쓸한 내용이었지만, 다소 흐린 머나먼 이국의 하늘 아래 산들바람과 함께 들으니 오히려 마음이 들뜨는 것 같았다. 가사는 친구에게 ‘너는 지옥에서 천국을, 고통에서 푸른 하늘을, 차가운 철길에서 파란 들판을, 베일에서 미소를, 도대체 구분해 낼 수 있니?’ 묻는다. 그리고 떠나가버린 친구에게 ‘네가 여기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읊조린다. 여행 오기 전에는 다소 마음이 가사의 정서처럼 ‘사는 게 이게 뭔가?’ 하는 심정이 있었던 것 같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지금은 한결 가벼워졌다.

휴게소 화장실에서는 다행히 돈을 받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는 ‘걱정을 해소하는 곳(해우소)’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꼭 대가를 지불해야 했었다. 그리 비싸지는 않았지만 물도 공짜가 없었다. 같이 내린 딸을 기다리는 동안 어느 청소하는 여인의 무뚝뚝한 시선과 마주쳤다. 여기 사람들의 표정은 왠지 경직되어있는 것 같았다. 주위에 먼 들판으로 눈을 돌리니 희뿌연 미스트 속에 봄을 맞은 들판이 멀리 지평선으로 뻗어 있다. 올해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봄을 맞이하게 되었다.

버스가 다시 출발했다. 제법 햇살이 많아졌다. 졸다 지친 막내는 어느새 게임에 열중이다. 둘째 딸아이도 스마트폰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아내 역시 목적지 숙소 근처에 볼거리나 맛집이 있는지 검색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여행의 풍속도를 많이도 바꾸었다. 버스는 와이파이도 되고 충전도 되었다. 여행객들의 손에는 지도 대신에 이제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다. 교통편이나 숙소도 그때그때 인터넷으로 편리하게 예약한다. 현지 언어를 전혀 몰라도 스마트폰의 지도에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자신의 위치를 보고 복잡한 도시에서도 목적지가 어디건 쉽게 찾아간다. 덕분에 낯선 동유럽에서도 대중교통을 용감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새삼, 작고한 스티브잡스가 고맙다. 그는 우리의 일상을 많이도 바꾸어 놓았다. 아마도 그는 역사적인 인물로 남게되지 않을까?

버스는 이제 산악지방으로 들어섰다. 날씨도 덩달아 어두워지고 어느새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눈으로 변했다. 크로아티아는 칠레처럼 남북으로 길쭉하게 뻗어있는데 북쪽 자그레브는 산악지역에, 관광지로 유명한 두브로브니크는 남쪽 끝 해안지역에 있어서 하루에도 여러가지 날씨를 경험하게 된다.

며칠 전 저녁 처음 두브로브니크에 들어섰을 때는 유명세에 비해 다소 실망스러웠다. 게다가 그날 저녁에 식당에서는 런던의 다섯배가 넘는 바가지 요금을 뒤집어 썼다. 이런 곳에 오려고 10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왔던가 하는 아쉬움마저 들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눈부신 햇살과 함께 바닷가 성벽 위을 걷고, 고풍스러운 건물들 사이사이 아기자기한 골목을 누비고, 지중해의 옥빛 파도에 발을 담그니 심란한 기분은 말끔히 사라졌다. 이곳 한곳만을 택해서 꼬박 하루를 달려온 보람은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오히려 이승기와 이미연이 바다 위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셨다던 절벽 위의 그 까페는 그저그랬다. 거리 곳곳에서는 한국에서 혼자 여행을 온 젊은이, 젊은 커플, 중년의 그룹들을 마주쳤다. 프라하에서도 느꼈지만 이제 세계 곳곳에 한인 관광객들이 붐비는 것 같았다. 현지인의 입에서도 쉽게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를 들을 수 있었다.
비슷한 처지라도 한국에서 살았다면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었을까? 자녀의 뒷바라지,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느라 꿈도 꾸지 못했을 것 같다. 좀 무리해서 과감하게 여행에 투자하더라도 크게 생활이 망가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그간의 경험상 어떤 어려운 처지에서도 굶어 죽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자신감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아내의 말대로, 자라는 아이들과 함께 보냈던 이 시간들은 한 번 지나버리면 다시 사고 싶어도 사지 못하게 될 것이다. 다행히도 그간 소원했던 관계들이 여행지의 갖가지 에피소드를 함께 겪는 동안 한걸음 가까워진 느낌이다.

버스가 이제 유럽에서 마지막 밤을 지낼 자그레브에 드디어 도착했다. 내일이면 집에 도착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남아프리카에서 어렵게 자라서 체코 여자와 결혼하고 세명의 자녀를 두었다던 ‘저스티스’, 임원을 목전에 두고 회사를 뛰쳐나와 프라하에서 민박집과 투어가이드를 하고 있던 어느 아저씨를 비롯해 여행 중에 만났던 여러 인연들이 떠오른다. 이 도시에 이미 여기저기 피기 시작하는 꽃처럼 런던에도 봄이 왔기를 기대해본다. 왠지 다시 마주할 일상이 이제 그리 싫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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