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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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표정이 우울하다. 아침에 학교로 데려다 주는 길이었다. 끝내 눈물을 보인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아도 대답이 없다. 그저, 자기의 일 때문은 아니라고만 말한다. 어젯밤에 오빠랑 밤늦게 까지 얘기를 나누더니 그 때 누군가의 근황을 들은 게 아닐까 짐작했다. 내가 자랄 때도 친구들 사이에서는 부모님들이 모르는, 한 다리 건너 어느 친구의 사건사고 소식을 접하곤 했었다. 여기서 자라는 우리 아이들은 무슨 이야기를 듣고 있을까? 아마 우리 때보다 더 악화된 이야기가, 더욱 흔하게 퍼지고 있으리라.

최근에 알게 된 어떤 기도를 아이에게 들려 주었다. “하느님, 어쩔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어쩔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주시고, 이 두 가지를 구별하는 지혜도 주소서.”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의 모임(AA)’에서 시작할 때 하는 기도이다.

이런 모임에 경험이 많은 어느 상담사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다수의 사람들이 약물(마약)이나 알코올, 담배, 도박 등 전통적인 중독뿐만 아니라, 컴퓨터 게임, 일, 돈, 섹스, 권위 등의 중독에 빠져 힘들어 하고 있었다. 우리 대부분은 중독자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중독은 우리 일상 가까이에서 맴돌고 있는 셈이다. “나를 잃어버리고 밖에 매달리는 것”이 중독이다. 그리고, 그 치유 과정은 바로 자기자신을 다시 찾는 과정이다.

사람들이 중독에 빠지는 이유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한다. 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밖에 있는 뭔가에 매달리게 되는데 거기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중독이 된다. 실패와 재발의 원인도 이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은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하고 흔히 조언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스트레스는 내가 원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받는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내가 그 조절할 수 없는 것을 ‘조절하고 싶어서’ 받는 것이다. 맘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내 맘대로 하고 싶은데 그게 마음 같지 않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생긴다. 아이들에게는 학교성적, 생김새, 친구, 엄마, 취업 등이 그렇고 어른들에게는 배우자, 자녀, 일터, 이웃 등이 그렇다.

더 많이 가지거나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워질 것 같지만 오히려 삶이 더 피곤해질 수 있다. 예전에는 지하철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주로 잠을 청했지만, 요즘은 지하철에서도 스마트폰을 통해서 전에는 하지 못하던 수많은 것을 당장 할 수 있게 되었다. 전에는 집에 있을 때 상사에게서 전화가 오면 ‘내일 출근해서 처리하겠습니다’ 했지만 요즘은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으로도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핑계를 대기 힘들다고 한다. 또, 전에는 내가 아무리 사고 싶은 것이 있어 안달이 났다 한들 다음 날 아침에 그 가게가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리고 또 거기까지 사러가야 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바로 구매할 수 있다. 더 쉽게 일, 쇼핑, 게임, 도박, 카톡(관계중독)에 중독된다. 이전에는 한계와 제약이 휴식을 가져왔지만 그것이 없어지니 오히려 중독 증세에 고삐가 풀려 버린다. 힘, 돈, 시간이 늘어날 때 우리는, 필요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쓸 수 있기 때문에 쓰기 십상이다. 이래저래 자기자신으로부터 더욱 멀리 도망간다.

중독의 특징은 결과를 빨리 볼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어제 술을 먹었는데 오늘 취한다든가, 오늘 도박을 했는데 내년에 판가름 난다든가 한다면 아무도 중독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중독환자들은 단기 속성, 즉석 효과를 바라게 된다. 또, 중독환자들은 무기력하고 게으를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완벽주의적이고 주변 환경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본인의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뭔가 틀어지면 모든 것이 끝장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중독은 한편으로 말하면 ‘교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내가 모든 것의 중심이 되어서 원하는 삶을 이끌어가려는 성향 때문에 스트레스가 생기고 이를 피해서 쉽고 빠른 것에 의존하다가 중독이 생긴다.

중독에서 벗어나는 길은 ‘내가 원하는 대로 안되어도 괜찮다’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황당한 말 같지만) 사실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그래서 삶이 관리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나에게는 세상을 내가 원하는 대로 이끌어나갈 힘이 없다. 또한, 나는 당장 5분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능력도 없다. 이 실망스러운 모습이 바로 잃어버렸다가 다시 대면한 나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불구하고 ‘그래도 괜찮다’. 왜 괜찮은지는 스스로 발견해야 할 문제이지만, 한번 이것을 깨달으면 그 보상으로 반드시 평온함이 찾아온다.

수능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아이들에게 엄마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응원의 말은 “엄마는 네가 시험 잘 칠 것이라 믿어. 파이팅!” 이라고 한다. 그러나 막상 본인들을 근원적으로 더 불안하게 만드는 말이다. 그들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는 엄마의 격려는 “시험 못 쳐도 괜찮아. 이 시험에 네 인생이 달린 것은 아니야. 잘 치건 못 치건 네가 인생을 잘 살아 낼거라고 믿어. 그러니 최선을 다해 치고 와” 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벌써 오후가 되었다.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다. 오는 길에 얼굴 빛을 살피니 한결 밝아졌다. 우리 아이도 스스로 잘 살아내고 있나 보다. 성경에는 “두려워하지 마라”하는 말이 아주 흔하게 등장한다. 그러나, 그 다음에 “네가 원하는 대로 될테니…”라는 말은 없다. 우리 아이도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믿음이 있는 아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을 애써 콘트롤하려 하지 않는 지혜로운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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