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생각보다 빨리 눈이 내렸다. 미처 낙엽을 처리하지 못했는데 눈으로 덮였다. 거기다가 우리집 나무는 유난히 늦게 낙엽을 떨구는 수종이라, 눈 위에 나머지 낙엽들이 늦게 떨어졌고 밤새 다시 눈으로 덮였다. 눈이 잠깐 녹는 날을 기다려 낙엽을 긁으려 했지만 날씨를 보니 겨울은 이제 제대로 시동이 걸려버렸다. 낙엽이 눈에 뭍히니 왠지 더 처량하다.
“이제 좀 괜찮아?” 아내는 출근하기 전에 지나가는 말로 묻는다. 한 일주일 정도 몸살기와 함께 두통과 설사를 달고 살았다. 상한듯 남은 음식이 아까워 꾸역꾸역 먹다가 체했던 것인지, 아니면 유행하는 감기에 걸렸던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아내의 말은 왠지 예의상 던진 것처럼 들려서 문득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몸이 불편해지니 이 나이가 되고서도 마음이 유치해지나보다. 음절 하나하나에 걱정을 담아 안절부절하며 물어주기를 바랬던 것일까? ‘우쭈쭈’해주기를 바라고 거기에 ‘칭얼칭얼’로 답하고 싶을 정도로 기가 약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루종일 스트레스 받아가며 일하랴, 집에 와서도 이리저리 종종거리는 아내에게 마냥 남편에게만 집중해 달라고 조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내의 마음이 새처럼 금새 직장으로 날아가버리더라도 마음 굳게 먹고 서운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었다. “응, 자꾸 나아지고 있어.” 그냥 안심시켜주는 쪽으로 대답하고 말았다.
며칠 전에는 “당신한테서 안좋은 냄새가 나는데?” 하며 아내는 나보고 목욕 좀 자주하고 옷도 자주 갈아입으라고 채근했다. 땀이 오래 배인 냄새, 홀아비 냄새, 환자 냄새가 뒤섞인 이상한 냄새라고 했다. 한동안 땀을 흘리는 일도 없었고 몸 상태도 별로여서 샤워를 등한시 했더니 금새 티가 났나보다. 같이 사는 사람에게 이제 매너를 좀 갖추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이빨에 고추가루 붙었다든가, 입에서 구취가 난다든가, 몸에서 냄새난다는가 말을 일초의 망설임 없이,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쏴줄 수 있는 사이라면 아주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 있으니 아내는 그야말로 내 절친임이 틀림없다.
나이가 드니 점점 부부 사이의 친밀도는 아내와 친구의 중간, 혹은 엄마와 아들의 바깥 언저리 쯤으로 자리잡는 느낌이다. 아끼는 이웃을 어쩌다 만나면 어딘가 아프다는 것을 문득 기억하고는 진심으로 걱정하며 안부를 묻고 당장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있는지도 생각하지만, 그 자리에서 멀어지면 다시 만날 때까지 왠만해서는 내 관심사에만 몰두하는 일상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필요할 때 언제든지 달려갈 마음도 있지만 소식이 잠잠할 때는 그저 평소의 근심걱정에 온통 매달린다. 아내와도 혹시 이런 비슷한 관계에 접어든 것일까? 좋은 이웃같은?
어쩌면 이런 시기에 접어드는 것은 봄날의 찬란한 꽃들과 여름의 풍성한 녹음과 가을의 아름다운 단풍을 지나 낙엽을 떨구고 열매를 맺는 자연스러운 변화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 때는 한 사람의 영혼을 나 혼자 온통 독점해야 진정한 사랑이라 생각하기도 했었다. 아무래도 드라마나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일 것이다. 사실, 이선희의 가사처럼 상대방은 “비바람이 없어도 봄은 오고 여름은 가고 눈물이 없어도 꽃은 피고 낙엽은 진다.” 그러니 쓸쓸할 것도 없다. 칭얼거리던 유아시절을 벗어나 각자 성인이 되어서 맺는 관계가 더 참다운 관계인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누구나 ‘성인’이 되는 것이 인생의 진정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며칠 후에 몸 상태가 좀 호전되었다. 아내에게 카톡 메세지로 기쁜 소식을 전했다. “아직 많이 말랑말랑하기는 하지만 오늘 십 며칠만에 드디어 국물이 거의 없는 똥이 나왔습니다. 이 기쁨을 부부로서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변기를 보니 이제 뿌옇게 흐리지 않고 맑은 물 아래 똥이 형상을 이루고 있는 모습도 잘 보입니다. 내 똥 축하해 주세요.” 카톡에 구린내 나라고 장난삼아 보낸 메세지였다. “귀하의 된똥 진심 축하합니다. 정상적인 변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느낍니다.” 의외로 점잖은 답을 받았다.
드라마에는 하루가 10분 정도로, 영화에는 80년 인생이 흔히 2시간 안밖으로 집약되어 있어서 그 외의 자질구레한 삶이 ‘드라마틱하게’ 생략되어있다. 사랑을 하지 않는 동안에 자리하는 일상의 스트레스가 통째로 편집이 되어있는 것이다. 결혼생활은 편집되지 않은 드라마와 같다. 그러나, 죽으면 지상에서의 제도가 맺어준 부부관계도 결국 벗어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애벌레 때 친했던 친구와 나비가 되어서 다시 친해지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도 상상해본다. 내세의 삶에 결혼이라는 제도가 없다해도, 일단 그 관계에 거짓과 이기심과 일상의 근심걱정들이 모두 편집되어 서로 독점하지 않고도 기쁜 관계가 되는 것이라면, 지상에서 행복했던 그 어느 부부관계보다 더 행복한 관계가 되지 않을까도 기대해본다. “우리 부부는 이제 우정으로 버틴다”라는 농담섞인 말을 가끔 듣지만, 나이가 들면서 부부가 이성관계에서 친구관계로 변하는 것은 어쩌면 ‘발전’일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이제부터라도 아내의 영혼을 독점하지 않는 연습을 해야하지 않을까 한다.
아내에게 나는 젖은 낙엽보다 못한, 눈에 묻힌 낙엽 신세인가 하는 생각도 가끔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직 아내에게 자그마한 쓸모라도 있다면 다행이지 싶다. 각자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되지 않을까…… 점점 추레해지는 나를 좀 꾸며주려했던 것인지 아내는 집에 올 때 내 손목시계를 사왔다. 그래, 고맙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