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당신은 안녕하신가요? – 그에게만 닥친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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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귀정.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치다 2002년 캐나다 런던에 정착. 팬쇼 졸업 후 RPN으로 근무하며 웨스턴으로 진학. 졸업 후 현재 RN으로서 환자를 돌보며 신명나게 살고 있음>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와중에, 다른 병원에서 환자가 이곳으로 이송 중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50대 후반의 남자, 컨트롤이 잘 안되는 오래된 당뇨병, 당뇨 합병증으로 인한 신장기능 저하와 극심한 시력 감퇴, 감염으로 인해 한쪽 무릎 아래 절단, 과거 여러번의 심근경색과 그로 인한 몇 번의 스텐트 (stent) 시술. 한숨이 절로 나왔다. 보나마나 이런 환자는 우울증을 겪고 있을테고 자신에게만 끊임없이 닥쳐오는 이런 불행으로 세상을 향해 분노하고 있을테지. 게다가 거동이 불편하고 시력까지 좋지 못한 이 환자를 케어할 생각을 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번에도 흉부쪽 통증이 심해서 잠에서 깨어났는데, 심해지는 통증 때문에 결국 구급차를 불러 인근 도시의 병원 응급실로 가게 된 모양이었다. 그곳에서 응급처치를 한 후 이곳으로 이송하여 결국 또다시 스텐트 시술이 필요한지를 검사하는 앤지오그램 (angiogram)을 받아야 할 것이다.

드디어 구급대원들에 의해 간이침대에 들려진 그가 도착했고, 왁자지껄 요란하게도 문을 열고 들어온다. 나는 심호흡을 한다. 아직 정오가 되기도 전. 남은 예닐곱 시간 동안 이 불행한 환자의 아우성과 푸념과 분노를 들어주려면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하니까.

복잡한 입원절차를 도와주러 온 서너명의 동료 간호사들이 애써 들뜬 목소리로 환자를 맞았고 구급대원들과 함께 환자를 침상으로 옮긴 후, 바이탈 사인을 체크하고 심전도 모니터를 연결했다. 환자를 동반했던 다른 병원의 간호사에게 리포트를 받은 후 환자의 방으로 들어가 웃으며 내 자신을 소개했다. 허걱……예상치 못했던 환한 미소. 그는 나보다 더 환하게 웃는다. 나는 잠시 멈칫한다.

심근경색이 전에도 몇 번 있었는데 또 비슷한 통증을 경험했군요.
네. 맞아요. 오늘 새벽, 그 통증 때문에 잠에서 깼어요.
과거 병력을 보니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더군요. 얼마나 힘들었을지 전 상상이 안되네요.
아, 그런데 전 참 운이 좋아요. 늘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병원에 왔었는데 그럴 때마다 난 언제나 살아남았거든요. 저만큼 운 좋은 사람도 없을거예요. 참 감사한 일이죠.

아아…그리고 그는 정말이지 모든 것에 대해 고마워했고 미안해했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더듬거리며 버튼을 눌러 간호사를 호출할 때마다 미안해했고, 도움을 받을 때마다 환한 웃음과 함께 고마움을 연신 표현했다.

당신의 체중을 재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체중계를 제 앞으로 가져 오면 어떻게 하는지 보여드리죠.

손잡이가 달린 커다란 체중계를 그의 앞에다 가져다 놓았다. 침대에 걸터 앉은 그가 손잡이를 잡고 한 발로 체중계 위에 껑충 올라섰다.

거봐요. 별거 아니죠? 나에겐 정말 익숙한 일이예요.

열두 시간 근무를 무사히 마친 그날, 내 눈밑의 다크써클은 더 짙어지지 않았고 세상은 아직도 살만할 지도 모른다는 애매한 기분 좋음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리포트는 다음과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환자는 absolutely amazing gentleman!

(이곳에 실리는 이야기들은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으나, 현재 입원 중인 환자의 이야기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글 속의 인물들과 병명은 사실과 다르며, 환자의 개인 정보를 위해 각색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스텐트 (stent): 동맥이나 다른 혈관속의 혈액 공급이 원활히 되도록하기 위해 삽입되는 작은 관

*앤지오그램 (angiogram): 손목 혹은 사타구니의 동맥에 삽입된 작은 관을 통해 특수한 염색약을 주입한 후, 엑스레이를 사용하여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주요 동맥들의 건강 상태를 촬영하는 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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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자기를 흔들어 울지말라, 그러나 /공광규

막무가내인 바람과 약한 나무가 많아
세상이 슬픔덩어리인 양 보이지만
헐벗은 겨울 나무는 미풍에 울지 않는다

작은 바람 앞에서
쓸데없이 자주 울어버리는 나무들 사이에서
쉽게 자기를 흔들어 울지 말라

바람은 우리를
거친 들판에 몰고 다니며 구기고 찢어
세상 밖으로 내동댕이치려고 애쓰지만

소외의 크기가 같은 옆의 나무와
어깨 서로 기댄다면
구두발길질 따위엔 쓰러지지 않으리

그러나 몹시 사나운 바람 불어
우리의 슬픔이 미풍에도 자주 울어대는
나무들의 슬픔과 같지 않을 때

누가 나를 따라 울 것인가 살피지 않고
슬픔의 크기가 같은 나무들과 어깨동무하고
바람보다 더 큰 힘으로 울어버린다면

못견디게 그리운 이름 부르는
우리들 함성만 남아
세상 울리리 엎어버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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