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당신은 안녕하신가요? (13) – 우리는 이민자, 또는 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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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여년전 쯤, RPN으로서 나의 첫 직장은 널싱홈(nursing home)이었다. 그 곳에서 함께 일하던 한 PSW(Personal Support Worker), 카밀라는 고국에서는 RN이었지만 캐나다에서는 단기간 교육 후에도 취직하기가 비교적 수월했던PSW 과정을 택했고, 과정을 이수하자마자 바로 일을 시작해서 꽤 오랜 경력을 자랑하던 베테랑이었다. 약사였던 남편의 수입으로도 벌이가 괜찮았지만 카밀라는 자신의 일을 사랑했고 매사에 꼼꼼했으며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다. 아이들이 아직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닐 때였기 때문에 카밀라는 언제나 밤근무만 했는데, 사람들이 북적대는 낮근무보다는 밤근무가 맘이 편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카밀라는 흑인 이민자였고, 아직 영어가 귀에 많이 익지 않았고 업무가 익숙하지 않았던 나에게는 단단한 마음을 지닌 카밀라가 큰 의지가 되었다.

널싱홈의 노인분들은 대부분 보수적이고 고루한 옛생각을 지닌 백인들이었는데, 생각을 걸러서 표현하지 못하는 치매 노인들에게서 그들의 백인우월주의적인 사고는 더 극명하게 드러났다. 어떤 이들은 카밀라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척하며, 나를 향해 “나는 저 사람(카밀라)이 하는 말을 도통 알아 들을 수가 없네요. 뭐라고 하는거지?”라고 하는가 하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럴때면 카밀라는 “내 말을 못 알아듣다니 참 안되었네요. 보청기가 필요한 모양이군요.”라거나, “여기가 내 나라이니 난 아무데도 안가겠어”라고 담담히 말했다. 때로는 “너 같은 흑인에게 도움 받기는 싫어!”라고 말하며 케어를 거부하는 노인에게는 “거 참 안됐네요. 댁을 도와줄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맘이 바뀌면 벨을 누르든지 하시죠.”라고 말했다. 차분하지만 거침없던 카밀라의 응대에 나는 속이 시원했고, 한편으로는 소위 선진국이라고 불리우는 캐나다에 아직도 이런 야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적잖이 실망했다.

그런 일이 나에게도 닥쳤다. 몇 년 후, 널싱홈을 그만두고 재활병원에서 일할 때였다. 한 노인이 오랜 시간의 입원기간에도 불구하고 치료와 재활에 성공을 거두지 못해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 병원 생활 덕분에 나는 그 노인을 잘 알고 있었고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상냥했고 다정했고 일요일마다 병원 미사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어느날 새벽 그에게 진통제를 주기 위해 병실안에 들어섰고 머리맡의 불을 켰다. 그리고 침대 상반신 각도를 높여 그가 약을 잘 복용할 수 있도록 했다. 잠들어 있던 그를 깨운 내게 화가 난 그가 내뱉은 말은, “You should go back to your country making a dollar a day (당신의 나라로 돌아가 하루에 1달러나 버는 생활이나 하시지)”였다. 바로 옆 침대에 있던 다른 간호사가 놀란 토끼눈을 하고 그 환자에게 다가가 적절하지 못한 그의 발언을 지적했고, 나는 부르르 떨며 사과를 요구했다. 그는 “I am SORRY!!!”라며 앙칼지게 내뱉었다. 그 이후 나는 이 캐나다 런던에 살고 있는 다정한 백인들을 오랫동안 미워했고,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했으며, 병원에서는 웬만해서는 웃을 수가 없었고, 사무적으로만 환자들을 대했다.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환자들은 그들의 귀가 되고 입이 되고 그들을 변호하며, 특히 방문객을 제한하는 요즘엔 가족들에게 메신저가 되어주는 내 말에 정말 열심히 귀를 기울인다. 나는 빈틈 없으려 노력하고 백인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이 공부한다. 그리고 묵묵하게 일만 하는 외국인 노동자로 인식되고 싶지 않아 목소리를 높이고 때로 두려움없이 반대 의견도 제시한다. 그렇다 한들, 나는 이 땅에서는 눈에 띌 수 밖에 없는 이민자이고 외국인이고 앞으로도 그럴 터이다 .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Where are you from?”이라는 질문을 피하지 못할 것이고, 내 이름은 ‘캐네디언에게는 너무 어렵게’ 들릴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 곳까지 오게 된 연유는 각자 다르지만, 오늘 하루 자기 몫을 감당하며 살고 있는 우리 모두 한사람 한사람에게 박수와 찬사를 보낸다. 그대는 오늘 하루 정말 훌륭했습니다!

(위의 글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각색하였으므로, 등장인물들에 대한 정보는 사실과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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