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당신은 안녕하신가요? (14) 객지에서 고생하는 간호사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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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글쓴이: 김귀정.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치다 2002년 캐나다 런던에 정착. 팬쇼와 웨스턴 졸업 후 RPN을 거쳐 현재 RN으로서 환자를 돌보며 신명나게 살고 있음, email: red4sun@gmail.com)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한국 사람들이라면 언어장벽으로 겪었던 무용담 몇 개쯤은 다들 가슴에 지니고 있을 터이다. 어느 개그맨이 그로서리 가게에서 우유를 사려고 아무리 혀를 굴려가며 ‘밀크’를 발음해도 알아듣지 못하자, ‘미역’을 달라고 했더니 바로 알아듣고 우유를 꺼내 주었다는 우스갯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또 누군가가 다섯 명의 친구들과 함께 팀홀튼에 가서 커피를 주문했는데, ‘For here, or to go? -여기서 드실건가요, 아니면 포장해서 가져가시겠습니까’라는 말을, ‘Four here, two go -네 명은 실내에 있을 수 있고 두 명은 나가야 합니다’라고 오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박장대소한 적도 있었다.

19년째 캐나다에 살고 있는 지금도 영어가 불편하지만, 정착한 이후 처음 몇 해 동안은 영어 때문에 심호흡을 해야 하거나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일을 하루에도 몇 번씩 겪어야 했다. 더구나 한국에서 국민윤리교육을 전공하고 학교에서 윤리만 8년을 가르치다 온 서른 중반의 내가 간호사 공부를 하며 접했던 막다른 언어 장벽은 높고도 높았다. 익숙해져야 하는 의학 용어는 제 3외국어나 다름 없었기 때문에, 교과서 한 페이지를 읽고 이해하는데에도 몇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날마다 모든 걸 때려 치우고 싶은 생각만 가득했다.

팬쇼 칼리지에서 Registered Practical Nursing을 공부할 때였다. 입학하자마자 이론과 실습이 빠듯하게 이어져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극심한 스트레스와 자괴감, 열등감의 연속이었다. 조용히 강의를 듣는 수업이라면 혼자 괴로워하다 말면 되었을텐데, 수업은 언제나 토론 수업이었고 그룹으로 나뉘어져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일도 많았다. 내가 잘못하면 나만 망하는게 아니라 타인의 성적에도 영향을 주니 침묵을 지키는 일은 결코 가능하지 않았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역시나 현장실습이었는데,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가 언어 장벽으로 힘들어한다면, 환자에게 결코 믿음과 신뢰를 줄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무엇보다 컸다.

산부인과에서 실습을 할 때였다. 갓난아이를 출산한 산모에게 아기를 목욕시키는 방법을 설명하며 시연을 했다 (생각해보면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일인데, 요즘에도 이런 일이 간호과 학생에게 허용되는지 모르겠다). 아이 두 명을 낳아서 기르고 있던 나에게 신생아 목욕을 시키는 일 자체는 쉬운 일이었으나, 모든 행동의 절차와 그 이유들를 영어로 설명하면서 무척이나 버벅거렸던 기억이 난다. 목욕을 마치자마자, 여리디 여린 신생아가 마구 울어대기 시작했다. 황급히 아기를 수건으로 닦고 이불로 감싼 후 산모에게 건네주며, “아기가 배가 고픈 모양이네요. 수유를 하시겠어요(Do you want to feed her)?”라고 한다는 것이 그만 “She must be hungry. Do you want to eat her? (아기가 배가 고픈 모양이네요. 아가를 먹겠습니까?”)라는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또 어떤 학기에는 정신과 포렌식 병동에서 실습을 했었다. 포렌식 병동은 환청이나 망상같은 증상 때문에 범죄에 연루된 사람들을 주로 치료하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들이 투약된 약을 실제로 잘 복용하는지, 그리고 그 약 성분들이 혈액 속에 일정한 농도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간호사들이 정기적으로 환자들의 혈액을 채취했다. 그 날 나와 함께 일했던 간호사는 돋보기를 썼다 벗었다 하며 한 환자의 정맥을 찾는데 애를 먹고 있었다. 학생이었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 간호사가 단 한 번의 시도로 혈액 채취에 성공하길 기도하며 이것 저것 필요한 것들을 그에게 건네주는 일 뿐이었다. 성공적으로 혈액을 채취한 후 그 간호사가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하는 일도 없이 고맙다는 인사를 받은 나는 순간 당황하여, “천만에요, 저의 기쁨 (pleasure)이예요”라고 한다는 것이, “You’re welcome. It is my problem (그게 나의 문제예요)”라고 말해버렸다.

지금은 과거의 이런 실수들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을 때에는 주저없이 ‘미안하지만 다른 식으로 설명’을 해 달라고 하거나, ‘이해하지 못했다’고 양해를 구할 수 있는 배짱이 두둑하게 생겼으니, 19년 전 처음 이 땅을 밟았을 때보다는 살아가기가 얼마나 수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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