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당신은 안녕하신가요? (15) – 아픈 딸, 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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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서른 둘의 줄리아가 있다. 그의 병실 창문에는 두꺼운 막이 24시간 내내 드리워져 있어서 한낮에도 방 전체가 어두컴컴하다. 줄리아는 자연광이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것이 극도로 싫다. 낮에는 주로 잔다. 먹고 싶은 생각도 없고 허기가 느껴지지도 않는다. 행여 깨어 있기라도 하면 온몸이 아프기 때문에 간호사를 호출해서 진통제를 주사해 달라고 애원한다. 간호사들의 대답은 언제나 비슷하다. 마지막 진통제를 투여한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시간이나 삼십분을 더 기다려야 한다고. 줄리아는 본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 의료진들이 무능하게 혹은 무심하게만 느껴진다. 마약성 진통제 주사를 맞고 나면 또 깊은 잠에 빠진다.

줄리아의 심장 밸브 하나가 말썽이다. 몇 년전에도 심장 밸브가 박테리아에 감염되어 몇 달 동안 항생제 정맥 주사를 맞고 나서야 수술을 할 수 있었는데, 그 밸브가 또 망가져 버렸다. 또 지긋지긋한 이 박테리아 감염. 몇 가지의 독한 항생제를 각각 네 시간 마다, 여덟 시간 마다, 24시간 마다 정맥을 통해 투약받아야 하므로, 간호사들이 곤히 자고 있는 줄리아를 낮이건 밤이건 깨운다. 이들은 또 혈압, 맥박, 산소 포화도 따위를 측정하느라, 또 몇 가지 약을 시간 맞춰 먹으라고 하며 줄리아를 귀찮게 한다. 꾸역꾸역 약을 복용해봐도 별 차도가 없지 않은가. 열이 오르락 내리락 반복할 때마다 오한이 느껴진다. 오늘 하루만 벌써 네 번째 따뜻한 담요를 요구했다. 어제와 오늘 간호사들이 가져다 준 담요들이 의자 위에 수북하게 쌓여 있지만, 식은 담요는 줄리아의 오한을 멈추지 못한다.

줄리아는 맡고 싶지 않은 환자다. 의욕을 잃어버린 눈빛,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먹다 만 과자, 쵸콜렛, 주스 등의 음식, 병실 바닥에 뒹구는 양말이나 슬리퍼, 옷가지 따위. 창문을 열 수 있다면 활짝 열어 젖혀서 신선한 공기를 이 방 가득 들어오게 하고 싶다. 며칠에 한번 어쩌다 샤워를 하긴 해도, 씻는 것도 먹는 것도 별 관심이 없이 줄리아는 그저 약에 취해 잠만 내리 잔다. 깨어나면 아직 투약할 시간이 돌아오지 않았는데도 진통제를 달라고 울먹거린다. 줄리아 엄마가 매일 병문안을 온다. 그의 엄마는 병실 구석 의자에서 잠든 줄리아를 무기력하게 한참 동안 바라본다. 이불을 덮어주고 주섬주섬 병실 바닥의 물건을 정리하다가 줄리아가 통증을 호소하며 울먹거리면 줄리아 엄마도 울먹거리며 간호사를 부른다. ‘내 딸이 너무 많이 아파요.’

줄리아를 볼 때마다 나는 울고 싶다. 꽃다운 청춘. 줄리아야, 너는 얼마나 아프냐. 네 마음도, 네 심장도, 네 몸뚱아리도 그 얼마나 버거웠느냐. 더 어렸던 줄리아를 내가 알았더라면 너를 꼭 안아주었을텐데. 아아 살아 있으면서도 살아 있지 않은 줄리아야 너는 얼마나 아프냐.

줄리아는 약물 중독으로 오랫동안 고통 받았다. 정맥 주사를 사용하는 약물 중독자들은 오염된 주사기를 사용하거나 주사기를 타인과 함께 사용하기도 하므로 여러가지 감염병을 앓기가 쉽다. 박테리아로 감염된 줄리아의 심장 밸브는 장기간의 독한 항생제로도 낫질 않았다. 제대로 열리거나 닫히지 않는 밸브 때문에 심장 속의 피는 순환하지 못했고, 심부전증으로 급기야 온몸이 부어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날 줄리아는 그의 엄마가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했다.

그리고 또 다른 줄리아가 늘 병원에 입원한다. 줄리아야, 나는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가 아프지 않게 도와주고 싶은데, 나는 참 무기력하구나.

(위의 글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각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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