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건씨, 아직 새벽 한시 반 밖에 안되었는데요.”
“어이쿠, 시간이 그것밖에 안되었다고? 미안해요. 다시 들어가 자야겠네.”
셔츠와 바지까지 말끔하게 갈아 입고 구두까지 챙겨 신은 모건씨는 머쓱해하며 다시 병실로 들어간다. 매일 밤 벌어지는 일이지만, 간호사들은 여든 중반의 모건씨의 치매를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 들인다.
모건씨는 다시 잠옷으로 갈아입고 조용히 병실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한다.
“모건씨, 아침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어요. 새벽 세시입니다.”
“저런, 너무 이른 시간이구먼. 더 자야겠네.”
다시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고 구두를 신은 모건씨가 물끄러미 간호사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우리들 중 누군가가 시간을 일깨워주자 아무런 불평없이 다시 병실로 향한다.
모건씨는 가벼운 치매를 앓고 있지만 거동을 하는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너싱홈이 아닌 은퇴 아파트에서 와이프와 함께 살고 있었다. PSW (Personal Support Worker)의 도움으로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마치고 나면, 와이프의 휠체어를 밀면서 나란히 아파트 안팎의 이곳 저곳을 다니며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모건씨의 발목과 정강이 쪽이 붓기 시작했고, 기침까지 심해지더니 숨가쁜 증세까지 더해져 일상 생활이 몹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60년 이상을 함께 곁에서 동고동락했던 와이프의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고, 결국 응급실로 오게 되었다. Heart Failure (심부전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심장과에 입원한 지 벌써 한달이 되어간다. 심장 기능이 약해져 다리 아래쪽 혈액 순환 장애가 초래되었고 그것 때문에 발목과 정강이가 부었던 것이다. 입원할 당시에는 손가락으로 부은 곳을 누르면 밀가루 반죽 마냥 눌렸던 자리가 표면으로 올라 오기까지 10초 이상이 걸렸다. 약해진 심장 기능으로 폐에도 물이 고여, 숨이 가빠지게 되었고 오래된 감기 마냥 기침을 심하게 하고 있었다.
입원 이후, 이뇨제를 정맥 주사로 꾸준히 투약받고, 하룻동안 음용하는 액상 형태의 모든 음료에 대한 철저한 양 조절, 소금 섭취 제한 등등의 치료법으로 모건씨의 건강 상태는 놀라울 정도로 호전되었다.
그렇지만, 장기간 병원 입원으로 모건씨의 치매가 더 악화되어 와이프와 딸은 모건씨를 너싱홈으로 옮기기로 결정했고, 와이프도 모건씨를 따라 함께 그곳에서 살기를 원했다. 캐나다에서 적절한 너싱홈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너싱홈의 숫자가 부족한데다, 두 사람이 함께 방을 사용할 수 있는 너싱홈을 구하려면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최근에 은퇴한 딸은, 어머니를 병원으로 매일 모시고 온다. 함께 살아온 지 60여년. 은퇴 아파트에서 남편 없이 홀로 지내는 어머니가 얼마나 외로워하실지, 아버지를 얼마나 걱정하고 있을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모건씨가 식사를 한다. 건너편에서 모건씨를 흐뭇하게, 그리고 또 안타깝게 바라보는 와이프와 딸. 모건씨는 식성이 아직 좋은 편이다. 병원에서 제공하는 식사가 뭐 그리 맛이 있으랴. 그러나 모건씨는 표정 없는 얼굴로 마지막 한숟갈까지 다 드신다.
“잘 먹었어요. 고맙소”
와이프와 딸에게 식사를 권하지도 않고, 식사를 했는지도 물어보지 않는 모건씨. 그렇지만 식사 후엔 이렇게 고맙다는 인사를 꼭 한다.
“모건씨, 이 아름다운 방문자는 누구인가요?”
“……내 생각엔 내 아내와 딸 인것 같아”
“와이프 이름이 뭔지 생각나세요?”
“………….리사”
“지금이 몇 년도인지 기억나세요?”
“……..1985”
표정없는 얼굴이지만 성의껏 대답한다. 대답을 정정해주면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냐면서, 자기 기억이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한다.
와이프와 딸이 돌아가려고 모건씨에게 작별인사를 하자, 그가 답한다.
“방문해줘서 고마워요. 좋은 하루 보내시오.”
와이프가 떠나며 내게 말한다.
“모건씨 같은 남편이 또 있을까요. 그는 언제나 자상했지요. 고맙다는 말, 맛있다는 말, 내가 최고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했었고, 절대 언성을 높이는 일이 없었죠. 그는 지금 치매에 걸려있지만, 그 순한 성품이 변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예요.”
치매는 사랑했던 순간들,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들, 가장 소중했던 사람들을 기억에서 자꾸 지운다. 영향 받은 뇌의 부위에 따라 성격이 바뀌기도 하고, 난폭해지기도 하며,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되고, 거동을 못하게 되거나, 결국 자신의 이름마저 잊어버리게 된다.
모건씨가 퇴원한 지, 일년 정도 지났을때, 모건씨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어느 빌딩에서 모건씨는 와이프의 휠체어를 밀고 있었고, 딸이 그들 곁에 있었다.
모건씨, 그리고 리사씨….마지막 순간까지 꼭 지금처럼 다정한 모습으로 함께 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글쓴이: 김귀정.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치다 2002년 캐나다 런던에 정착. 팬쇼 졸업 후 PRN으로 근무하며 웨스턴 대학으로 진학. 졸업 후 현재 RN으로서 환자를 돌보며 신명나게 살고 있음. 글의 내용은 글쓴이의 경험을 토대로 각색되었으므로 사실과 다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