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당신은 안녕하신가요? (7) –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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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퇴근 길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션과 알리는 결혼을 두어 달 앞두고 의사에게서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다. 정기적인 신체검사여서 대수롭지 않게 의사를 만났는데, 션에게서 진행속도가 매우 빠른 드문 형태의 갑상선 암이 발견되었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이런 종류의 희귀 갑상선에는 치료법이 아직 없다. 의사는 션에게 넉달에서 길게는 일년 정도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으니, 그동안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꼭 만나고, 또 그의 버킷 리스트 목록에 있는 삶의 계획들을 더 이상 미루지 말것을 충고했다.

션과 알리의 머릿속에 처음 떠 오른 생각은, 두 달 후로 계획했던 결혼식을 다 취소해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복잡한 생각이었다. 알리는 자신이 이런 비극적인 사랑의 주인공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의사는 그들에게 ‘일상의 삶’을 그대로 살아 갈 것과, 계획했던 결혼식을 그대로 진행할 것을 권했고, 그들은 의사의 충고를 따르기로 결정했다.

초대했던 하객들에게 션이 암과 투병중이지만 그들의 결혼식이 오로지 자신들의 사랑에 집중되길 원한다는 것을 알린 후, 성공적이고 행복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들은 이후 미국에서 실험 중인 약을 투여받기로 했다. 가격은 자그만치 20만불이나 되었지만, 함께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연장시킬 수 있기 때문에 션과 알리는 주저없이 그 치료를 시도하기로 했고 현재 종양의 크기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언젠가 죽음이 그들을 갈라 놓으리라는 두려움과 슬픔 보다는 그들이 함께 있을 수 있는 하루하루의 행복함을 만끽하기로 다짐했다.

션과 알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만났던 70대의 노부부가 떠올랐다. 제인은 첫눈에 보기에도 여왕 같았다. 제임스는 제인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거나 손을 이마에 올리기만 해도 어쩔 줄을 모르며 제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심근경색으로 입원한 제인은 스텐트 (Stent: 좁아진 혈관속의 혈액 공급이 원활히 되도록 하고 혈관 내경을 넓히기 위해 삽입되는 금속으로 된 그물망) 시술을 받고 회복 중에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평소 지병인 류머티즘과 편두통으로 순조롭지 못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빛을 차단하기 위해 제인은 병실 안에서도 짙은 썬글래스를 쓰고 있었고, 제임스에게 이런 저런 심부름을 시켰다.

“제임스, 오른쪽 어깨가 결려요” 라고 하면 제임스는 재빨리 제인의 오른쪽 어깨를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아이참, 그쪽이 아니라 조금 더 밑이라니까요” 라고 짜증을 내도 제임스씨는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가며 마사지를 한다. “어때요? 이곳인가? 아니면 좀 더 아래쪽?”

“제임스, 나 좀 부축해 줘요. 저쪽 의자로 옮겨 앉을 수 있게”라는 말이 떨어지자 마자, “오오 그래요. 침대에만 있는 건 좋지 않아”라고 서둘러 제인의 팔을 부축해서 편안히 앉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팀홀튼에서 제인이 주문한 커피를 가져오는 제임스씨에게 어쩌면 그렇게도 자상한 남편이 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몇달 후면 우리가 결혼한지50년이 되어가요. 우리는 고등학생때 사귀기 시작했는데, 제인이 십대 후반에 류머티즘 진단을 받았어요. 좀 나아졌다가 악화되었다가를 반복하다가 스물 셋 되던 해에,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정말 많이 나빠져서 혼자 걷기가 힘들게 되었지요. 의사는 그녀에게 앞으로 1년 안에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될 것이고 영원히 두 발로는 걸을 수 없을 거라고 말했죠.

제인은 나에게 ‘제임스, 당신이 나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괜찮아요. 당신을 놓아줄게요. 더 늦기 전에 나에게서 떠나가세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평생 나에게 얽매여 살아야 할 거니까요.’라고 했지요. 나는 주저없이 절대 제인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고, 오늘까지 이렇게 함꼐 하고 있는 거예요. 제인은 휠체어 신세를 지지도 않았고, 지금도 걸을 수 있다오. 그 의사는 돌팔이였소. 하하하….”

제임스의 이야기를 어깨 너머로 듣고 있던 제인은 흰소리를 한다며 제임스에게 핀잔을 주었으나 얼굴 가득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코비드 19로 스트레스가 많은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내가 다른 사람을 행여 아프게 하지나 않을지, 알지 못하는 타인들이 나에게 병을 옮기지는 않을지 신경이 곤두 서 있다. 그러나 행여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서 오늘 내 삶이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평소보다 더 많이 먹을 수도 없고 화장실을 더 자주 가지도 않을 터인데, 식료품 가게에 빈 진열장이 늘어나고 화장지는 아직도 사기가 힘들다. 미래에 대한 적절한 대비는 중요하지만, 걱정과 우려로 하루하루를 낭비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우리가 숨쉬며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는 사람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을 백프로 즐기는 것이 가장 현명하게 사는 방법이라는 것을, 션과 알리 그리고 제인과 제임스를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글쓴이: 김귀정.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치다 2002년 캐나다 런던에 정착. 팬쇼와 웨스턴 졸업 후 RPN을 거쳐 현재 RN으로서 환자를 돌보며 신명나게 살고 있음. 글의 내용은 글쓴이의 경험을 토대로 각색되었으므로 사실과 다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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