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첫해에 나는 기숙사에서 기거했다. 가슴 터질 것 같던 신입생의 봄과 여름. 친구들이랑 마음이 벅차 미친듯이 종로를 뛰어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덧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었을 때 깊은 밤 고요한 기숙사 뒤안길을 헤매며 외로움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가족과 헤어져 고향을 떠나온 것이 비로소 실감이 났다.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한켠이 저리다.
외롭다는 것은 우리에게 정말 불가피한 일일까? 실존이 어쩔 수 없이 짊여져야하는 십자가일까?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 어쩔 수 없이 고독을 안고 가야한다고 어른스럽게 체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면 외로움은 현대 문화가 가져온 병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좀 더 강해지기를 원한다. 자신을 다그치며 홀로서려고 애쓴다. 자립하려면 사랑하던 모든 이를 떠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려면 가족도 친구도 떠나 새처럼 절벽에서 굴러 떨어지며 혼자 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 서양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부모님과 같이 살며 숙식하는 젊은이들은 친구들 사이에서 패배자로 치부되곤 한다.
너무 가혹하다. 현대 젊은이들은 불쌍하다. 인간의 역사를 통틀어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라고 젊은이들에게 요구하는 분위기는 오직 현대에 들어와서일 뿐이다. 백년 전만 해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결혼하더라도 기껏해야 부모님의 옆집 정도에 새 살림을 차릴 뿐이었다.
현대 산업사회의 첨단을 걷고 있는 일본의 경우를 보면 서글퍼질 정도이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 없이 살며 심지어 결혼조차 하지 않은 채 고립되어 산다. 사람들은 마치 렌트카를 빌리듯이 돈을 들여서 손자 손녀, 애인, 아버지 어머니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용역서비스 받아서 나들이를 간다. 서로 다정하게 불러주고 포옹하기도 하며 주말 오후 시간을 같이 보낸다.
최근 몇십년동안 일본에는 새로운 젊은 계층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이들은 아파트에 혼자 살며 몇년 동안이나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다. 일은 집에서 컴퓨터로 처리하고 음식은 배달을 시켜 먹고 쇼핑은 온라인으로 해결한다. 남과 얼굴을 마주할 일이 없이 스스로 끝모르게 고립된 생활을 한다. 비공식적으로 이런 생활을 하는 도시 젊은이들이 백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고도 한다. 이들을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라 부르고 옥스포드 사전에도 올랐다. 이것이 일본만의 문제일까?
홀로서기를 종용하는 현대사회는 우리를 외로움으로 내몬다. 그런데 이 외로움이 심각해지면 헤어나기 어려워진다. 부모와 고향을 떠나온다거나 사랑하던 사람을 잃었다는 이유로 슬프거나 외로운 것은 어쩌면 언젠가 털고 일어나기만 하면 되는 문제일 수도 있다. 누군가 슬픔에 주저앉아 있을 때 잠깐만이라도 일어나 5분만 걸어보라고 그를 격려할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 다리가 이미 부러져 있다면? 그들에게는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하는 영웅적인 행위일일 것이다. 현대에는 내면의 상처를 안고사는 우울증 환자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외로움에서 탈피하고자 우리는 필사적이다. 우리는 흔히 결혼을 외로움을 탈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하지만 그러다가는 실패하기 쉽다. 삶의 목표를 외로움의 추방이라든가 기분전환거리를 끊임없이추구하는 것으로 설정했다가는 결국 자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모든 것은 (아내마저도) 도구가 되어버리니까. 우리는 단지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일(diversion)에 몰두하는 방식으로 살기에는 너무 고귀하게 창조되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롭게 창조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어쩌면 그것은 현대 문화가 우리에게 떠넘긴 병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은 태초에 이미 충족된 존재, 충만한 존재로 창조되었다. 이브가 아담에게 주어진 것은 아담이 결함이 있어서가 아니며, 그의 고독 때문에 애완견을 안겨주듯이 주어진 것이 아니다. 아담은 본질적으로 신을 닮아 완전체로 창조되었고 그 완전체는 신적인 특징을 따라 ‘사랑’을 해야하는 체질을 가졌다. 그래서 사랑의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브가 주어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이제 나를 행복하게 해줄 사람을 찾기보다는 내가 사랑해야할 사람을 둘러보아야할 시기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