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당신은 안녕하신가요? (8) – COVID 19대응으로 드러난 캐나다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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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CBC)

3월 초, 병원의 대형 강의실에서 약 백여명의 사람들과 함께 이틀 간 수업을 들었다. 수업을 마치고 그 다음날 우리 가족은 큰 딸아이를 만나기 위해 몬트리올을 방문해서 2박 3일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대한 인식이 퍼지기 전이어서 몬트리올은 가는 곳마다 사람들로 북적였다. 런던으로 돌아 온 이후에 나는 평상시와 다름 없는 일상생활을 이어 나갔다. 장을 보러 다녔고, 치과를 다녀왔으며, 코스트코에서 타이어를 교체했고, 친구를 초대해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출근 준비를 하기 위해 도시락을 챙기던 도중, 심장이 떨리는 소식을 전달받았다. 함께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 중 한 명이 코비드 19 확진 환자로 판명되었으니, 당장 자가격리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수업을 들은 지 5일 만에 연락이 왔으니, 내가 가까이 접촉한 사람들만 해도 열 손가락이 모자랄 판이었다. 당장 내가 확진자로 고통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타인에게 이 바이러스를 전염시켰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몹시 괴로웠다. 전화를 끊자마자, 기억나는 대로 내가 접촉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다. 몇 명은 그들도 자가격리를 해야하는 지 내게 물었고, 나는 제대로된 답을 할 수 없었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마른 기침 증세가 생겼고 목도 아픈 듯 했지만 열도 없고 숨쉬기에도 문제가 없었다. 어떠한 증세도 가볍게 여길 수 없었기 때문에 테스트를 받아야 하는지를 두어 차례 문의했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테스트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다 자가격리 마지막 날, 마침내 테스트를 받으라고 연락이 왔고, 이틀 후 음성 판정을 받았다. 내 생애 가장 길게 느껴졌던 시간들이었다.

중국과 한국이 불철주야 코비드 19와 싸우고 있던 두어 달 동안, 충분히 준비할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정부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개탄을 금할 수가 없다. 정작 지금에 와서는 헬스케어 팀에게 PPE(Personal Protective Equipment)가 부족하니 아껴쓰라고 말도 안되는 강요를 하고 있다. N95 마스크 뿐만 아니라 일반 Surgical 마스크도 부족한 실정이니, 한번 사용한 마스크를 서너 시간 동안 계속 착용할 것을, 다른 환자들 방으로 이동할 때에도 같은 마스크를 사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평소 같으면 한 환자의 병실에서 사용한 마스크, 가운, 장갑 등은 그 병실을 나오기 전에 벗어서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마땅하다. 그래야만 cross contamination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PPE가 부족하니 그동안 우리가 해 왔던 모든 원칙을 무시해도 괜찮다는 것인가.

2003년 SARS가 휩쓸고 지나간 이후, 캐나다 정부에서는 이런 위기에 대비하여 약 5천 5백만개 (55 million)의 N95마스크를 준비해 놓았으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이 많은 양의 마스크들의 유통기한이 모두 지나가게 내버려 두었다. (https://globalnews.ca/news/6715814/coronavirus-n95-masks-ontario/). 또한 여전히 코비드 테스트 키트가 부족해 전수조사가 아닌 선별적 진료와 선별적 테스트만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Doug Ford의 보수당이 정권을 잡고 있는 온타리오에서는 캐나다의 다른 주들에 비해 테스트를 받는 환자들의 숫자가 현저하게 낮다. 3월 30일자 THE STAR 신문에 따르면, 인구 십만명당, 퀘벡주는 777명,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는 747명, 알버타주는 1000명 이상의 테스트를 실시한 것에 반해, 온타리오 주는 겨우 333명의 테스트를 실시한 것에 그치고 있다.

지난 주 병원에서는 몇 명의 RN들이 제대로 된 PPE를 지급하지 않는 상황에서의 환자 케어를 거부했었다. 노조는 빠르게 대처했고 Ministry of Labour Inspector까지 개입하여 여러번의 미팅 후, 비로소 병원이 간호사들의 PPE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노조의 요구에 동의하게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병원에서의 마스크 지급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코비드 환자를 돌보지 않는 간호사들에게는 마스크를 지급하지 않았었다. 그런 와중에 다행히도 병원에서 일하는 모든 헬스케어 팀 멤버들은 그나마 얇은 종이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Surgical 마스크를 쓰고 일하도록 지침을 바꾸었다.

우리 모두는 대한민국의 정부의 성공적인 질병 컨트롤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이 캐나다 정부의 안일한 태도와 느려터진 대책에 분노와 절망을 느끼게 된다. 런던의 병원 노동자는 헤어릴 수 없이 많다. 그들이 이 바이러스에 노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보호되지 못한다면, 이 런던이라는 도시 전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온 힘을 다해, 정보를 공유하고 희망을 전파하면서, 이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든 뚜벅뚜벅 함께 헤쳐 나가야 한다.

(글쓴이: 김귀정.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치다 2002년 캐나다 런던에 정착. 팬쇼와 웨스턴 졸업 후 RPN을 거쳐 현재 RN으로서 환자를 돌보며 신명나게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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