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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다. 먼 코쟁이의 나라 조그만 도시를 차로 달린다. 저쪽 차가운 하늘 위로 보름달이 유난히 밝고 크다. 달의 낯짝은 늘 지구를 향하기 때문에 일년 내내 똑같은 모습이라는 것이 신기하다. 우리를 향한 토끼의 한결같은 마음 같아 추운 겨울이지만 정겹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저기 달 좀 봐요’ 하고 가리키면 달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가리키는 손가락을 유심히 관찰할 때가 있다. 그 손이 너무 곱다면 그 손에 취해 감탄한다. 한편 형체가 뭉그러진 문둥병 걸린 손이라면 아예 눈을 다른데로 돌릴 수도 있다. 어느 경우에도 달은 뒷전이다.

대표적인 섬섬 옥수의 손은 예술작품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고 우리는 감탄한다. 어떻게 저런 구도를 표현했을까, 어떻게 혼란과 의심과 논란이 가득한 식탁에서 홀로 평온한 예수의 모습을 저런식으로 구현했을까, 어떻게 그림 속 건물과 그림이 그려진 식당 벽이 일치되게, 그래서 같은 공간인 것처럼 입체적으로 그래서 같이 식사하는 듯 느껴지도록 그렸을까. 그러나 정작 그림의 기법과 표현의 천재성에 감탄하다보면 어느새 그 작품이 가리키는 곳을 놓치기 십상이다.

가리키는 손가락에 똥이 묻었다면 아예 고개를 돌려버린다. 대체로 나와의 관계가 파산상태인 사람의 손가락이다.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가지 습관’에서 관계를 은행 저축에 비유한 적이 있다. 평소 꾸준히 저축을 해서 은행 잔고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도록 하면 내가 실수하여 관계에 금이 가는 일이 생기더라도 부도까지는 가지 않는다. 그러나 은행 잔고가 간당간당할 경우에는 아주 작은 실수가 부도 상황으로 몰고 간다. 부도 이후에는 아무리 달을 가리킨다 한들 그 진정성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여보, Stop 사인에서는 꼭 3초동안 멈췄다가 출발해요.” “아니, 왜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 운전할 때 집중 좀 해요.” ‘화성남자 금성여자’라는 책에 의하면 바로 부부싸움으로 돌입할 상황이다. 그러나 부부은행에 쌓인 잔고가 많은 경우라면 남편은 ‘허허, 미안’ 하고 말 것이다. 어떤 부부는 운전 중 사소한 충고에도 커다란 싸움의 불씨로 번지는가 하면, 어떤 부부는 어쩌다 직접 눈으로 목격한 심각한 오해의 상황, 다른 부부 같으면 파경으로 이어질 일도 그럭저럭 잘 넘어간다.
고운 손이든 더러운 손이든, 손가락이 아니라 그것이 가리키는 달을 보게 되기까지는 아무래도 깊게 돌아가는 지혜가 필요한가보다. 본능의 힘만으로는 손가락에서 눈을 떼어 달을 보기 힘들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오랜기간 동안 길러진 소양이 필요할 것이다. 누구나 그 손가락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싶어하거나 그 더러움에 집착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 손이 어떠한 손이건, 설사 그 손이 나와 파산관계에 있는 손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가리키는 것이 달이라면 묵묵히 그 달을 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

내 마음은 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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