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 서울대 정신의학과 교수 >
<’성장문답’ 프로그램 녹취>
Q: 매번 잘못을 하고도 핑계만 대는 친구가 있습니다. 마지 못해 하는 사과에 괜히 기분만 상합니다. 제대로 사과하는 법은 무엇일까요?
A: 이런 사과 받아본 적이 있으실 거에요. ‘내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사과할께.” 이건 사과가 아니죠. 욕하는 거죠. 더 기분이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형태로 사과할 때 가장 내 마음이 전달될 수 있는가 하면, 사과에 4가지 단계가 있어요.
첫번째는 일단 미안하다 그러는 겁니다. ‘내가 잘못이 있다면…’이라고 조건을 거는 게 아니라. 그래서 1단계는 미안하다 하는 거고, 두번째는 비슷한 맥락이지만 내 잘못이다 이러는 거죠. 우리가 미안하다 까지는 잘 하는데 내 잘못이다라고는 안 할 때가 많죠. ‘미안해. 미안해. 차가 막혔어.’ ‘죄송합니다. 컴퓨터가 느려서요.’ 컴퓨터가 느린 것도, 누가 그런 컴퓨터를 가지고 있으라고 했냐 할 수도 있는 문제에요. 우리는 자꾸 핑계를 대는 것이거든요. 근데 그러는 거는 당연해요. 왜냐하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자기 방어를 하거든요. 그래서 일차적으로 핑계가 막 떠올라요. 그럴 수 밖에 없어요. 본능인거죠. 어쨋든 자기의 본능을 억누르는 게 필요한 거죠. 내 잘못이라고 인정하는게 쉽지가 않거든요. 자기 보호 본능과 어긋나서요. 그래서, 첫번째로 미안해, 두번째로 내 잘못이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까지도 할 수 있는데, 세번째가 특히 중요한데,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보 어제 내가 늦게 들어와서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뭐 ‘회식 때문이야’ 이렇게 얘기하면 안되고요. 그다음에는 ‘그리고 내가 다시는 12시 넘어서 들어오지 않을께’ 하면 훨씬 상대방이 기분좋게 되고 잘 받아들여지게 되어있습니다.
3번까지도 잘 넘어가는데 그렇지 않을 때는 이제 회심의 4번이 중요합니다. 어쨋든 잘못을 한거잖아요. 감성적인 거라도 뭔가 구체적인 보상이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내가 어떻게 보상하면 될까’ 이런거죠. 저도 가끔 별거 아닌 걸로 부부싸움이 나서 아내가 화가 날 때 실험을 해 본적이 있는데요. 어디 상품권이 좀 있어서 ‘여보 미안해. 상품권 줄께.’ 내가 딱 그 얘기 하는 순간 갑자기 아내가 자기가 뭘로 화를 냈는지가 생각이 안 난다고 그러더라구요. 돈이라는 거는 요물이기도 하지만 사실 거기에 마음이 담길 수도 있거든요. 뭔가 구체적인 걸로 보상을 해줄려고 그러면 갑자기 그 속상했던 감정이 이렇게 훅 날라가는 면이 있죠.
거기에 하나 더 팁을 드리면요, 우리가 약속 같은 거를 어기게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쪽에서 ‘너무 너무 미안해. 내가 그날 못 하게 됐어. 언제로 바꿀 수 있을까’ 이렇게 많이 하는데요. 그때 우리가 바쁘다 보니까 예를들어 ‘26일은 안되고 28일은 어때?’ 하게 되는데 이런거 보다 날짜를 세 개 정도 그쪽에 더 주는 게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이거를 Freedom of Choice라고 하는데요, 사람은 상대방이 나에게 선택의 기회를 줄 때 저 사람이 나를 굉장히 배려한다고 생각하는 걸로 되어 있거든요. 우리가 뭐 업무 지시를 받을 때도 ‘이번 거 이렇게 진행하는 게 어떨까?‘ 라는 식으로 ‘까’라는 일종의 선택을 물어주면 좋아요. 좀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도 ‘다’로 끝나면 하기 싫어지는 게 내 선택의 자유를 없애버리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자유에 대한 욕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세계사를 보면 아마 인류가 자유를 얻으려고 흘린 피가 아마 태평양을 다 채우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만큼 자유에 대한 욕구가 강력하게 있죠. 그래서 약속 장소나 시간을 옮길 때는 28일 30일 31일 중에 어때? 라고 물으면 오히려 상대방이 ‘쟤는 왜 자꾸 옮기고 그래’ 하는 느낌 없이 상대방한테 섭섭한 마음을 덜 가지게 하고 심지어는 ‘저 녀석 괜찮은데’ 뭐 이런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