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당신은 안녕하신가요? (9) -집이 더 위험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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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자 주: 이 글은 지난 4월 13일 기고된 글입니다.

(김귀정) 십여 년 전, 웨스턴 대학 간호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일 때, Community Nursing이라는 과목의 실습을 하게 되었다. 딱히 학교에서 내려온 프로그램이나 지침이 따로 정해진 것이 아니어서 우리 그룹의 네명의 학생들은 정부에서 복지 정책의 일환으로 운영하는 하우징 커뮤니티에서 아동들을 대상으로 건강한 삶에 대한 방과 후 교육 프로그램을 해 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정부의 렌탈 하우징 서비스를 이용하여 살고 계시는 분들 중에는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정부에서 제공하는 정부보조금 (Welfare)에만 의존해 어려운 삶을 영위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들과 아이들에게 프로그램을 홍보하기 위해 그 동네를 한바퀴 돌다 보면 쓰레기가 가득한 뒷마당, 여러마리의 개가 그대로 방치되어 뒷처리를 하지 못해 풍기던 고약한 냄새, 열린 문틈 사이로 정리되지 못한 집안 내부 등이 눈에 띄었고, 이를 통해 어렵사리 삶을 영위해 가는 분들의 사정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부모의 동의서에 싸인을 받고 방과 후에 참석했던 아이들은 모두 사랑스러웠고, 이제 막 퍼블릭 스쿨에 들어간 아이에서부터, 5학년에 재학중인 아이들까지 연령은 다양했다. 학교에서는 한 번의 프로그램을 위해 20달러를 지원했지만 그것으로 프로그램에 이용되는 학용품과 아이들 간식을 준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서 매번 우리가 조금씩 돈을 보태야만 했다. 우리는 매일 프로그램을 준비하기 전 세일 품목에 들어 있던 커다란 치즈 블록, 요거트, 과일 등의 다양한 간식 거리를 샀다.

그들의 부모가 어떤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던 간에, 혹은 어떤 태도로 아이들을 양육해 왔던지 상관없이 꽤 많은 아이들이 흥미로운 얼굴로 왁자지껄 수업에 참여했다. 사실 건강한 삶과 건강한 식사같은 주제는 그 커뮤니티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는 너무 거리가 먼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아이들이 원한다고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교육의 내용보다는 아이들이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였다. 돌이켜 보면 그 중 상당 수의 아이들은 수업 내용보다는 제공되는 간식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아이들, 케잌을 장식하는 하얀 frosting 한 통으로 하루 온종일 허기를 채워야 했던 아이들, 혹은 부모의 무관심으로 자주 학교를 빼먹는 아이들을 만나야 했다. 그 중 어떤 아이는 정부 보조금이 나오는 족족 부모가 약이나 술을 사는데 대부분을 이용하므로 집에는 먹을게 언제나 부족하다고 했다. 프로그램을 마치고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저녁 무렵에 우리는 종종 더욱 우울해지곤 했었다. 나는 선진국이라는 이 캐나다라는 나라에서조차 보호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는 아이들이 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에 두 딸을 둔 엄마로서 몹시 힘들었다.

코로나 사태가 쉽사리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여전히 의료용 마스크가 부족해서 병원으로 출근해야 하는 날이 다가오면 잠을 설치고 분노하거나 절망할 때가 여전히 잦다. 그러던 와중에 학교가 문을 닫는 바람에 어느 때보다 더한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https://www.nationalobserver.com/2020/04/01/news/child-abuse-will-spike-amid-covid-19-crisis-advocates-warn).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비지니스가 문을 닫고 직장을 잃거나 일자리가 줄어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에 놓여 있으며, 이러한 어른들의 스트레스는 곧 가정폭력의 굴레에 갇혀 있는 아이들을 더욱 위협하게 된다고 했다. 신체적 혹은 성적 학대등의 가정 폭력을 당하는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가 없어 바깥 세상에 노출될 기회가 적고 그로 인해 적절한 시기에 도움을 받을 기회를 박탈당하는 위험에 처해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외출 자제와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이 시작된 이후로 아동학대에 대한 신고 건수가 눈에 띄게 줄었는데, 이는 실제로 아동학대가 줄어든 것을 반영하는게 아니라 아동학대가는 여전히 자행되고 있지만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아 신고 건수가 줄어든 것을 의미할 뿐이라고 이 기사는 풀이한다. 이 기사를 읽으며 십여 년 전 렌탈 하우징 커뮤니티에서 만났던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 아이들은 대부분 성인이 되어 있을테지만, 그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또 다른 아이들은 시대마다 존재하며 이러한 때에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사회적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많은 사람들이 예민해져 있다. 이런 와중에도 주변을 돌보고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따뜻한 이야기가 종종 들려와 세상은 여전히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서 치유 받는다. 이럴 때일수록 주변과 나를 돌아보고 행여 사회의 그늘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외면하지 않도록 용기를 내야 할 것이다 .

(글쓴이: 김귀정.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치다 2002년 캐나다 런던에 정착. 팬쇼와 웨스턴 졸업 후 RPN을 거쳐 현재 RN으로서 환자를 돌보며 신명나게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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