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두셀라 나무

1936

얼마 전에 뉴욕타임스(NYT)는 ‘세계 지구의 날’을 맞아 현재 지구에서 가장 나이를 많이 먹은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인 ‘므두셀라’를 소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데 지금 4천847세라고 한다. 므두셀라라는 이름은 9백살 이상 살았다는 노아의 할아버지 이름을 따랐다. 이 나무가 신기한 것은 아마도 우리네 인간 수명이 나무에 비해 너무도 짧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에는 인생의 짧고 덧없음이 ‘한번 내쉬는 날숨’과도 같은 것, ‘아침에 피었다가 잠시 푸르렀다가 저녁에 시들어버리는 풀과 같은 것’ 이라고 비유되어 있다.

자연에서는 오래되고 늙은 것을 본다면 경이롭게 생각할지언정 그것을 추하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유구한 세월과 하나가 되어 스스로 자연을 몸에 아로새긴 모습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도 자연의 일부이고 보면 늙고 주름진 얼굴도 ‘자연’스러움으로 인해 더욱 사랑스러운 것이다. 어린 시절에 익숙했던 동네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의 얼굴은 시골이라는 환경 때문인지 유난히 검게 그으르고 주름이 깊었다. 쌈지에서 사탕을 건네주며 미소 지을 때면 그 소박한 얼굴들에 새겨진 주름들이 더 깊게 파였다. 그들이 이제는 그립다.

아침에 집을 같이 나설 때 봄 햇살에 비친 아내의 햐얀 얼굴이 문득 눈에 띄었는데 오늘 따라 유난히 수수해 보였다. 아내가 화장을 번거로워 하는 것이 내 구미에는 무척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내 사진을 보면서도 흠칫 놀라는 때가 많지만 어차피 시들고 말 풀잎이라면 그냥 자연스러운 것이 아름다울 것이다. 내 얼굴이 좀 커도, 피부가 거칠어도, 몸의 비율이 좋지 않아도, 좀 비만이어도 그다지 큰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되는 여기 캐나다 분위기가 고맙다. 그래도 아내는 여기에서도 ‘클라스’ 있는 사람들은 다 모양 갖추고 다닌다고 핀잔이다.

옛 그리스 로마 사람들은 사람의 몸을 대할 때 극도로 몸을 숭배하거나 극도로 몸을 경멸하는 두가지 상반된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몸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신전에서 제사를 지내고 만찬을 하고는 뒤편으로 가서 신전 창녀들 중 하나를 골라 성행위를 함으로써 여신 숭배를 마무리하는 것이 관례였다. 또 디오니소스 신전에서는 만찬에서 음식을 즐기면서 한껏 먹은 후에 신전 뒤편에 특별히 마련된 방(vomitorium)으로 가서 벽에 걸린 깃털을 목에 넣어 토한 다음 다시 만찬장으로 돌아갔다. 몸을 숭상하였으므로 몸에서 최대한의 아름다움과 쾌락을 끌어내는 것이 선이었다. 한편 몸을 경멸하는 사람들은 몸을 영혼이 갇힌 감옥, 껍데기, 함정 쯤으로 여겼는데 이들은 극도의 금욕주의로 흘렀으며 몸에서 탈출하는 것, 심지어는 자살하는 것조차 해방을 위한 덕목으로 칭송되었다.

요즘 세상은 몸을 숭배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 같다. 몸에서 최대한의 기쁨을 끌어내는 것이 모두의 목표다. 문제는 여기에 해당하는 선망의 대상은 오직 30대 이하의 젊고, 건강하고, 다부지고, 아름답고, 비율이 좋은 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벗어날수록 자기의 얼굴과 몸을 싫어하게 된다. 아무도 늙고 병든 몸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세월이 준 자연스러움이라 해도. 미디어에서는 이제 현실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환상’적인 몸이 뽀샵 처리되어 등장하고 드라마에 등장하는 송혜교는 놀랍게도 10년 전과 얼굴이 같다. 이런 탓에 사람들은 거울 앞에 비친 자신의 늙어가는 얼굴과 몸을 우울해 한다. 50 넘은 내 누나는 이제 더 이상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오지 않는다.

몸을 숭배하는 것과 몸을 경멸하는 것은 어쩌면 동전의 양면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우리가 피할 수 없이 늙고 병들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때, 그리고 그런 몸을 사랑해야 할 때인 것 같다. 할 수만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이 몸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잘한 봉양으로 쓸 수 있기를 바란다. 건강한 30대 몸으로 돌아가기 위해 처량하게 애쓰기 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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