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당신은 안녕하신가요? -(10) Resuscitate, or Do Not Resuscitate? (심폐소생술)

426

(글쓴이: 김귀정.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치다 2002년 캐나다 런던에 정착. 팬쇼와 웨스턴 졸업 후 RPN을 거쳐 현재 RN으로서 환자를 돌보며 신명나게 살고 있음)

여러가지 지병에다 심부전증까지 겹쳐 쇠약해진 데보라를 돌보게 되었다.

데보라는 팔십 대 초반으로 당조절이 잘 되지 않는 당뇨병, 콩팥의 기능 저하, 시력 감퇴를 겪고 있었다. 게다가 심부전증과 심장박동의 이상으로 심장내과의 중환자실이라 불리는 CCU (Coronary Care Unit)에 며칠째 입원 중이었다. 여러 번의 정맥 주사 자국으로 양쪽 팔은 여기저기 멍이 들어 있었고, 솜과 의학용 테이프가 두어 개씩 붙어 있었다. 침상 옆에는 여러가지 약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서 데보라의 가늘고 약한 정맥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어떤 약의 성분들은 꽤나 독해서 정맥들을 금방 자극시키고 붓게 만들기 때문에 자주 다른 정맥으로 바꾸어 주어야 한다. 데보라는 조금만 움직여도 호흡 곤란이 자주 발생했으므로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보내야했다.

의학이 아무리 발달했다 하여도, 많은 질병의 원인은 아직 알려지 않았고, 그에 따라 치료 방법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심장내과 팀이 회진을 돌았고, 담당 의사는 쇠약해진 데보라의 몸상태를 고려해 볼 때, 심혈관 조영술 (angiogram) 같은 테스트를 실행하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미 기능이 많이 저하되어 있는 데보라의 콩팥은 혈관 조영술로 인해 기능을 완전히 상실할 위험이 높고, 스텐트 시술을 하게 되면 장기간 복용해야 하는 몇가지의 혈전제가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의 위험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 나 같은 간호사들은, 의사가 이런 사실들을 숨김없이 환자와 가족에게 직설적으로 설명하고 환자 본인이 자신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 하루에도 몇번씩 반복되는 혈액 검사, 여러가지 약의 복용량을 줄였다가 늘였다가, 또 추가했다가 취소했다가를 반복하는 노력에도 데보라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데보라는 여러 번 간호사들에게 본인은 할만큼 했노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이제 이 모든 것을 그만 했으면 싶어요. 난 몹시 지쳤어요.”

그렇지만, 데보라의 딸과 남편은 하루에도 몇 번씩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와 담당 간호사들에게 이런저런 테스트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또 더 많은 다른 테스트를 어째서 빨리 하지 않는지를 물었고, 의사와 레지던트들에게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데보라의 상태가 호전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데보라가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가족들에게 밝힐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데보라의 남편과 딸이 병문안을 왔다. 데보라를 잃고 싶어하지 않는 가족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데보라의 고통을 미처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들이 답답했다. 데보라의 남편은 누워있는 데보라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약속해요, 데보라. 절대로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아니요’라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또 나를 위해 모든 테스트와 시술을 받겠다고. 당신은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해줘요.” 데보라는 희미하게 웃으며, “나는 당신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할게요”라고 말하며 시술실로 향했다.

결국 데보라는 우리에게로 돌아오지 못했고 중환자실에서 호흡기에 의존하여 며칠을 지내다 결국 사망했다고 한다. 편안하게 임종을 맞지 못한 데보라를 생각하며 동료 간호사들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을 나눴다.

캐나다의 병원에서는, 의사가 모든 환자에게 입원 첫 날 이런 질문을 한다. “만일 우리가 당신의 심장이 멎고, 호흡이 중단된 것을 발견했을 때, 우리 의료진이 어떻게 해 주길 원합니까? 우리가 심폐 소생술을 하고 호흡기를 삽입하는 등의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당신을 살리도록 노력하길 원하십니까 (Resuscitate), 아니면 당신이 그대로 당신이 사망한것을 받아들이길 원합니까(Do not Resuscitate)? 만일 심폐 소생술을 원하지 않을 경우에는 어떤 단계의 치료를 원하십니까?” 이렇게 질문을 받을 때, 많은 환자들이 “나는 모든 걸 원합니다. 나는 살고 싶거든요”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모든 심폐 소생술이 생명연장으로 곧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수십 명의 의료진이 장시간 공격적으로 심폐 소생술을 시행해도 환자는 사망할 수도 있고, 짧은 심폐 소생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서 이후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도 있다. 또한 장시간의 심폐 소생술은 뇌손상 등의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기도 한다.

나는 환자들을 가장 가까이서 또 가장 오래도록 지켜보는 간호사로서, 평소의 자신의 생각을 사랑하는 가족들과 공유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대화를 자주 나누었던 환자의 가족들은 대체적으로 평온하게 위기를 맞는다. 그들은 사랑하는 가족이 잠시 의식을 잃었을 때조차도 환자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할 지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평소에 늘 그렇게 말씀하셨거든요. 엄마라면 이렇게 하시길 원하실겁니다.”라고 말하면서….

(위의 글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각색하였으므로 사실과 다릅니다)

NO COMMENTS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