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우유 열 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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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 투정하는 막내에게 아내는 어릴 적 내 이야기를 들려주며, “너는 호강하는 줄 알아라.” 했다고 한다. 언젠가 아내에게 중학교 때 시작되었던 우유급식에 관해서 말해준 적 있다. 내가 다니던 시골 중학교에서 학생들에게서 신청을 받아서 우유급식을 시작했다. 우유로 말하자면 당시 내 또래 시골 아이들에게는 꿈같은 음료였다. 흔하던 쑥떡이나 쌂은 고구마나 칡뿌리 같은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와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 마시는 음식으로 여겼었다. 지금 같으면 지중해에 떠 있는 호화스런 요트 갑판에서 캐비어를 먹는 장면을 상상할 때 드는 낯선 느낌과 비슷했던 것 같다. 당연히 나는 부모님의 주머니 사정도 미리 헤아릴겸 우유급식을 한번도 신청하지 않았고 떼를 쓴 적도 없었다.

내가 다녔던 시골의 초등학교는 한 학년에 한 반이 전부였고 이런 초등학교들이 여섯 개 모여서 시골 중학교가 되었다. 초등학교 때에는 대부분의 친구들의 처지가 비슷해서 모두가 감자나 도토리 같이 순박했다. 중학교에 들어와서도 친구들의 사는 환경은 대부분 비슷했다. 그런데 우유급식이 시작되면서 서로의 처지를 가르는 막연한 잣대가 등장한 셈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 집에 경운기가 있는지, 논은 몇마지기씩이나 되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교실에서는 점심시간이 되면 어떤 친구가 우유를 마시는지 어떤 친구가 마시지 않는지가 눈에 확연하게 들어왔다. 대충 삼분의 일 정도가 급식을 신청했다.

그러나 시골 아이들이라서 그랬는지 어른들 세계에서처럼 위화감 비슷한 것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은 차이가 있을망정 우리는 다 친구들이었다. 그런 우리들 사이에는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베푸는 암묵적인 호의로 받아들여지던 일이 있었다. 종이팩 우유를 다 마신 다음에 바로 팩을 버리지 않고 책상 위에 잠시 놔두었다가 다시 거꾸로 하면 열 방울 정도가 떨어졌는데 바로 이것을 다른 친구에게 양보해 주는 일이었다.

지금 같으면 이게 무슨 모욕과 수치인가 싶겠지만 당시에는 베푸는 친구도 그렇고 받아먹는 친구도 그렇고 양쪽 다 기쁜 마음으로 주고 받았던 것 같다. 나 역시 여러번 그렇게 우유방울을 맛보고 기뻐했었다. 우리 반에는 전교 일등하는 녀석도 있었는데 그 아이는 그 열방울을 지 얼굴에다 처 발랐다. 우유가 피부에 좋다는 것은 탤런트 장미희가 우유로 목욕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 모두들 알고 있었던 참이었다. 정이 없는 녀석은 지 얼굴에 열 방울을 바르고, 정이 있는 녀석은 친구에게 그것을 양보했던 것이다.

서울 토박이 아내는 좀 충격을 받으며 “앞으로 당신한테 잘해줄께” 했었다. 막내는 오죽하랴 싶었다. 나의 그 시절 이야기를 듣더니 막내는 엄마에게 “아빠는 그런 놈을 패주지 않고 그냥 내버려 뒀대?” 하면서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했다고 한다. 우유 열방울로 아빠와 친구들이 우정을 나누었다고 한다면 설마하며 핀잔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이에게는 굳이 사정을 설명하려 하지 않고 그냥 아내한테만 그것은 “정겨운 추억”이라고 짧게 귀뜸해 주었다. 주는 사람도 모욕을 주려는 의도 없이 호의를 베풀고, 받는 사람도 수치를 느끼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던 순수한 시절은 마치 아련한 실락원의 기억같다.

아내는 주방에서 일할 때 가끔 기르고 있는 강아지에게 “네 믿음이 참으로 크다.”하며 손질하던 음식 한점을 떼어 던져주곤 한다. 아내의 농담 중에 모처럼 좋아하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음식은 자녀들을 위해 준비하지만 내내 끝까지 기약도 없는 가운데 한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집중해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강아지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보노라면 측은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성경에는 생판 외국인이었던 어느 낯선 이교도 여인이 자기 처지를 이런 강아지에 비유하며 “빵까지는 아니더라도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정도는 강아지도 주워먹지 않습니까?” 하며 딸을 고쳐달라고 예수께 애원하는 장면이 있는데 결국 그분도 마음을 돌려 그 여인의 자녀를 치료해 준 적이 있다.

내게는 버려도 그만인 것이 때로 다른 사람에게는 커다란 호의가 되기도 한다. 성경에 나오는 또 다른 우화(?)에서는 어느 부자가 죽어서 영문을 모르고 저승에서 고통 중에 깨어났는데 눈을 들어 바라보니 저멀리 천국에 ‘라자로’라는 사람이 보였다. 라자로는 생전에 자기집 대문에서 병든 몸으로 그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만을 바랬던 거지였다. 부자의 살아생전의 악행이 전혀 기술되어있지 않다. 그렇다고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거기에 가게 된 이유는 아마도 생전에 자신의 풍요로운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마저도 라자로에게 던져주지 않았던, 그 ‘생명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슨 도움이 될까 싶을 정도로 내 눈에는 하찮게 여겨지는 것도 막상 받는 사람에게는 우유 열 방울 같은 기쁨을 줄 수도, 어쩌면 타들어가는 혀를 잠시 식히는 방울이 되어 줄지도 모른다. 뭔가 큰 돈을 빌려주거나 TV에 나오는 기부천사들처럼 자주 도네이션을 해야만 이른바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는 부담이 흔히 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재목이 아니라는 생각에 아예 그런 쪽으로는 마음을 닫고 내 일에나 신경쓰게 되고 만다. 그러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어쩌면 내 작은 격려의 말이나, 지나가는 칭찬의 말이나, 무심코 짓는 내 표정 하나가 그도 살리고 나도 살리게 되는 기적을 가져올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의 큰 흐름에 낙담할 때가 많다. 나도 모르게 염세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고 성악설을 믿게 된다.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닌데도 모두가 희생양이 되는 희한한 시대에 살고 있다. 세태의 이런 힘은 도도한 강물같고 내 미약한 의지를 압도하는 탓에 나로서는 뭔 일을 시도하든 아무런 소용없어 보인다. 결국 내가 책임질 일을 아니라고 자위하며 문을 조용히 닫게 된다.

평안을 청하는 기도가 있다. “하느님, 어쩔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안을 주시고, 어쩔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주시고, 그리고 이를 구별하는 지혜도 주소서.” 나는 어쩌면 어쩔 수 있는 것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포기하면서 스스로 기만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 때의 중학생이 자라서 어른이 되었고 살벌한 현실에서 살고 있지만, 그때처럼 지금도 우유 열방울이나마 상대방의 곡해를 염려하지 않고 줄 수 있고 누가 나에게 그것을 주더라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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