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에 목숨 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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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또 하루가 밝았다. 아침에 눈뜨자 마자 하는 하루의 일과들을 마치고 강아지와 함께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오늘따라 강아지는 유난히 나와 비슷한 점이 눈에 많이 띈다. 눈도 두개 귀도 두개 콧구멍도 두개에다 다리도 있고 머리도 있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 역시 동시대에 살았다는 말을 들었다. 이들의 모습은 사람과 강아지보다 더 서로 비슷했지만 사실은 고양이와 강아지처럼 전혀 다른 종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심지어 이들의 혼종조차 발견되기도 했다고 들었다. 시간이 흘러 하나는 멸종했고 다른 하나는 사람으로 진화되었다. 어느 날 강가에서 호모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만났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하다. 너무 비슷한데 우리는 무엇이 다를까 라는 의문?

서로 비슷한 모습의 사람들이 당장 섞여 살아가고 있지만, 진화라는 것이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이라면 지금 현재 인류에게도 진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쩌면 이웃 사람과 내가 아무리 비슷하게 생겼더라도 다 같은 인류가 아니라 어쩌면 이 속에서도 서로 다른 종의 분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는 멸종하고 누군가는 진화를 이어갈 것이다.

그렇지만 식별이 쉽지 않다. 어떤 이가 멸종하고 어떤 이가 살아남을지, 얼마나 오래 걸릴지도 나로서는 가늠하기가 어렵다. ‘돈과 명예와 권력이라는 삼위일체’에 가장 가까이 접근해 있을수록 아무래도 더 영리한 존재일 것이고 더 오래 생존할 것 같으니, 아무래도 이들을 연구해보는 것이 열쇠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약 이천년 전쯤에 생존과 멸망에 관해서 비상식적인 기준을 제시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느 날 당시의 정신적 지도자들인 수석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물었다. 그는 “어떤 사람에게 아들 둘이 있었는데 첫째에게 밭일을 시켰더니 처음에는 ‘싫습니다’ 했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둘째에게도 같은 말을 하였더니 처음에는 ‘네 하겠습니다’ 했지만 일하러 가지는 않았다.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 뜻을 실천하였느냐?” 하고 물었다. 지도자들은 당연히 “첫째 아들입니다”하고 답했다.

그 지도자들은 돈과 명예와 권력에 가장 근접해 있던 사람들이었다. 우리 옛날로 치면 그들은 어릴 때부터 사서삼경을 배우고 평생을 공맹의 말씀을 논하며 백성들에게는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모세오경이 사서삼경이자 논어, 대학, 중용이었다. 그런데 그는 “내가 말하는데 당신들 말고 세리와 창녀가 첫째 아들이다”라는 취지로 말했다. 당시 세리와 창녀로 치면 인권따위는 없는 인간쓰레기들로 간주되던 부류였다. 그런데 자신들보다 이들이 더 공맹을 잘 실천한다니 상상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는 일이있다. 그가 사람들을 가르는 기준은 알고있는 것에 대한 ‘실천’이었던 셈이었다.

겸손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사실 너는 겸손하지 않아’라고 말하면 보통 두 가지의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첫번째는, 마상을 입고 드러내지 않게 화를 낸다. 그리고 ‘지가 뭔데 남을 판단해’하며 상대방의 수많은 단점 리스트를 만든다. 두번째는, ‘내가 정말 그런가?’ 하며 쫄아버린다고 한다. 그리고 왜 자신이 그런지에 대해 상대방의 의견을 들어보려고 한다.

얼마 전에 동호회에서 테니스 복식 게임을 하다가 마음이 상하고 격해진 일이 있다. 네트 근처에서 공을 치기 직전에 ‘아, 라켓이 네트 너머로 넘어가면 실점이지’ 하는 생각이 들어 딴에는 주의해서 공을 쳤고 포인트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대방은 내 라켓이 네트를 넘었다고 우겼고 작은 다툼이 있었다. 결국 점수를 내주고 말았지만 경기 내내 시무룩한 모습으로 모두를 어색하게 했다. 내가 억울했던 것은 분명히 미리 조심했었기 때문에 라켓이 넘어갔을 리가 없고, 또 상대방들은 정면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우길 정도로 나보다 더 잘 보았을 리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상대방이 주장할 때 ‘앗, 마음과 달리 내 팔이 말을 듣지 않았던 모양이네. 몸이 예전같지 않아.’ 하고 쫄지 않았다. 오히려 ‘정황상 내가 틀릴 리가 없다’는 아집 때문에 화를 냈다. 나는 정신적으로 2천년 전 그 고대근동지역 지도자들의 완고함을 그대로 이어받은 그들의 후손인 셈이었다. ‘내가 잘못이 있을 리가 있나!’

자신의 삶이 명예롭지 못하다는 것, 자신의 삶이 비참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의 가장 큰 장점은, 옳은 소리를 잘 받아들일 정도로 찌그러져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옳은 소리를 들으면 보다 나은 삶에 대한 희망으로 첫째 아들처럼 나중에라도 받아들이고 ‘실천’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옳은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회한’이라는 것이 없다. 오히려 ‘너희들은 세리나 창녀보다도 못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불같이 화를 내고 어떻게든 그 모욕을 갚아주고자 한다.

‘화’나 ‘짜증’은 교만의 직접적인 증거라고 했다. 내가 뭔가 화를 내고 있다면 내 안의 교만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어쩌면 호모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보다 더 영리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는지도 모르겠으나, 다음 단계의 진화에서는 (2천년 전 그에 따르면) 좀 의외의 기준, 즉 좀 더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 살아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 아니면 내세에서라도…

누가 나에게 무슨 지적을 할 때 억울하고 화가 나고 모욕을 느끼고 되갚아 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아마도 나는 네안데르탈인일 가능성 (최악의 경우 강아지일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며 찌그러든다면 세간이 말하듯 ‘호구’인 것이 아니라 사실 다음 진화의 단계에서 선택받을 축복받은 인성의 소유자인지도 모를 일이다.

주위 사람 모두가 나처럼 똑같이 눈 두개 콧구멍 두개 귀 두개 입 하나 머리 하나이다. 테니스를 같이 했던 그 상대방은 그 일 후로 먼저 자신을 낮추며 다가왔다. 그도 처음에는 ‘싫다’ 했는지 모르지만 나중에 마음을 바꾸어 순순히 일하러 나간 첫째 아들처럼 내게는 보였다. 아무래도 나는 맨날 거룩한 체하며 살다가 막상 중요한 일은 피하는 둘째 아들인 것만 같다. 그 둘째 아들은 대신 다른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건다. 살아남는 종의 대열에 합류하려면 앞으로 광야로 나가 좀 더 고생하고 좀 더 깨져야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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