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하늘 은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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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제법 선선해졌다. 아침 저녁에는 반팔 속으로 스며올라오는 공기가 한층 스산하다. 추석 무렵이라 그런지 어둑어둑한 땅거미 위로 검푸른 동쪽 하늘에는 큼지막하고 샛노란 보름달이 거뭇한 나무들 위로 뭉클하게 걸려있다.

“달이 저렇게 컸었던가요? 색깔도 쌂은 강원도 찰옥수수 같이 노랗군요.”
“옥수수보다 더 예쁜데요? 가을 날씨가 맑아서 달이 크게 보이나 봐요. 스마트폰 사진으로는 저렇게 크고 예쁘게 나오지 않네요…”

같이 걷던 지인도 나이가 거의 비슷한 또래였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사건이나 사람들과의 관계를 섬세하게 헤아리며 설레기도 하고 때로는 상처받기도 하던 시기를 한참 지났다. 이제는 5분 전도 잘 기억나지 않는 나이로 접어들었지만 잠시 찾아오는 정취에 때로는 흠뻑 젖어든다.

무엇을 새로 시작하거나 새로운 것을 공부하는 것이 두려운 나이에 그래도 그는 용감하게 팬쇼에서 새로운 과정을 시작했다. 그러는 나는 어디 쯤에 있는지, 서있는지 걸어가고 있는지 아니면 뒷걸음질 치고 있는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아 문득 심란해졌다.

달은 잠깐 크고 노랗다가 금새 중천으로 솟아올라 작고 창백하게 변했다. 저 달처럼 요즘은 시간이 빨라도 너무 빠르게 채찍처럼 휙 지나간다. 시간이라는 것이 흐르는 강물이라면, 급류에 돛대도 아니달고 삿대도 없이 쪽배를 따고 하염없이 하류로 흘러내려가고 있는 느낌이다.

누군가가 그랬다. 인생은 천천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 걷는 여정이라고. 어릴 때는 온몸의 세포에 생명의 기운이 넘쳐서 그런지 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강물을 보면 자기보다 너무 느리다. 왜 이다지도 시간이 지루한지, 일주일이 일년같다. 그러다 장년이 되면 강물과 비슷한 속도로 걷는다. 노년이 될 수록 힘이부쳐 강물보다 더 천천히 걷게되는데 이 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 왜 저리 빠르게 지나가나 싶다. 사실 강물은 어릴 때나 젊을 때나 늙었을 때나 똑같은 속도로 흐를 뿐이다.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공감하는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나이가 그런 때로 접어들었나봐요. 몸이 세상에 반응하는 속도가 둔해진 거죠.” 하면 어떤 사람은 “인정하기가 싫어지는군요.” 하며 못내 서글퍼하기도 한다. 또 함께 식사를 하고 나서 지갑이 어디있는지 당황해하다가 결국 차안에 두고온 것을 발견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는 이에게 “노화의 징조가 아닐까요?” 하고 농담하면 상대의 안색이 썩 유쾌해 보이지 않는다.

엇그제 마당에 눈을 쓸었던 것같고, 엊그제 싱그런 풀냄새를 맡으며 걸었던 것 같고, 엊그제 따가운 햇살을 피해 그늘을 찾았던 것 같은데, 오늘은 벌써 한가위 날이다. 저 보름달도 강물위에 잠깐 얼굴을 내밀었다가 이내 세차게 흐르는 물길 아래로 얼굴을 감춰버리는 물고기처럼 금새 기울어버리고 말테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주차장에서 물건들을 정리하고 주섬주섬 호주머니를 챙기다 보니 바지주머니 안이 유난히 불룩해진다. 스마트폰만으로도 무거운데 지갑도 넣어야하고 열쇠들도 주머니에 넣는다. 빈털털이로 가방도 없이 시골길을 걸었던 적이 언제쯤이던가. 요즘은 지니고 다녀야할 것들이 너무 많다. 나이가 들수록 하나둘씩 버리고 싶은데 하나하나 놓고 보면 버릴 수가 없어진다.

집안 구석구석에도 이런 것들로 가득하다. 언젠가는 쓰이겠지 하고 이곳 저곳에 놓아두었던 것들이다. 한번 정리해야지 하고 다 꺼내서 무엇을 버릴지 고르다 보면 그래도 드물지만 이리저리 쓰이거나 언젠가는 필요한 것들이라 차마 버리지 못하고 다시 넣어둔다. 그래서 내 마음의 창고 안에도 잡동사니로 가득하다. 강물을 흐르는 나의 작은 쪽배가 너무 무겁다.

2천년 전 고대근동 지역의 사도들의 삶은 간단했다. 길을 나설 때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했던 스승의 말을 기억했다. 한 이백년 전 조선 땅에서의 천주교 선조들의 삶도 간단했다. 그들에게는 단 한가지가 문제였다. “붙들고 죽을 것인가, 아니면 버리고 살 것인가.”

지금은 평화롭지만 복잡한 세상으로 변했다. 지닐 것이 많아졌다. 보따리를 꺼내어 하나하나 놓고 보면 모든 것이 어딘가에는 요긴하게 쓰일 것이라고 느낀다. 버릴 것이 마땅하지 않다. 어느새 가방이 너무 가득차고 무거워졌다. 열쇠 하나를 찾으려면 가방 보따리를 한참이나 뒤적거리거나 아예 바닥에 내용물을 모두 쏟아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쪽배는 요트처럼 커졌지만 너무 무거워졌고, 알 수 없는 곳에 구멍이 나서 점점 가라앉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금새 창백해진 저 달은 은하수를 타고 서쪽 나라로 유유히 평화롭게 잘도 간다. 그러나 나의 배는 (운이 좋아 가라앉지 않더라도) 점점 물의 속도가 빨라지니 금방 폭포를 만날 것만 같다. 누구나 강의 끝에는 낭떠러지 폭포가 있다는 사실을 추리할 수는 있지만, 폭포가 시작되는 부분에는 강을 가로질러 커다란 광고판이 걸려 있어서 배에 타고 있는 사람의 시선과 판단력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린다. 그 광고판에는 젊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배우들이 마치 나에게 필요도 없는 상품을 예찬하며 마치 지금의 삶이 영원하기라도 할 것처럼 연기하고 있다.

간혹 노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설렌다는 사람도 보았다. 그 사람은 보따리에 있는 많은 것을 버리고 단 한가지 필요한 것을 선택한 사람 같았다. 많은 것을 버리면 거기에 수반되는 많은 염려와 걱정들과 분주함도 함께 버리는 것이다.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단 한가지일지도 모른다. 이것을 발견하고 택하는 사람은 빼앗기지 않을 좋은 몫을 택하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죽음은 허니문일 수 있을 것이다.

어둑해진 밤길을 운전하며 내 마음의 창고에 쌓여있는 물건들을 다시 한번 꺼내서 정말 내 쪽배에 필요한지 찬찬히 들여다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 얼마 후 카톡으로 내가 텀블러를 주차장에 놓고 왔다며 지인이 보관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의 뇌는 점점 노쇠해지고 있고 내 가방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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