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아주 먼 옛날 강대한 섬나라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기들이 이곳에서 영문도 모르고 종살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통스러워 하게 됩니다. 이 섬은 시커먼 바다가 둘러싸고 있었는데 아무도 탈출해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바다에는 괴물이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용을 닮은 것 같기도 한 그 괴물은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 개나 된다고 알려졌습니다. 바다를 건너가면 젖과 꿀이 넘치는 행복의 땅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소문으로 듣고 있었지만 아무도 갔다 온 사람은 없었습니다.
2장.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마치 달이 해를 품듯이, 그 땅에서 가난하게 살던 어떤 착한 처녀가 신을 뱃 속에 품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사백 년도 훨씬 지난 오래 전에, 선조들 중에 몇몇 예언자가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며 사람들을 위로했다고 하는데 후세 사람들은 그저 이제나 저제나 하며 참고 지내오던 참이었습니다. 태어난 그 아이는 사람인지 신인지, 혹은 신이면서 동시에 사람인지, 아니면 신이면서 사람인 척하며 지냈는지 잘 모르지만 조용히 서른 살까지 그의 어머니와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한달 열흘 정도 여행을 다녀오더니 그 후 3년 정도 사람들 사이에서 바다 건너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가 상대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신체적인 결함이나 마음의 상처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섬을 지배하던 영주의 분노와 사람들의 배신으로 결국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모난 돌이 정을 맞았구나 하고 불쌍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곧 그는 잊혀져 갔습니다. 그런데 얼마되지 않아 이상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를 가까이 따르던 사람들 사이에서 그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그는 홀연히 사라졌지만 무슨 설계도 한 장을 남기며 늘 그들과 함께 있겠다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과연 그를 따르던 무리들과 그 무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순진한 사람들은 목숨을 바쳐가며 그 설계도 대로 배를 한 척 만들었습니다. 배는 살아있는 돌로 만들어졌는데 그 돌에서는 이상한 물이 솟기도 하고 때로는 빵처럼 식량으로도 변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신기한 자재였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유람선처럼 작더니 승선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놀랍게도 저절로 커졌습니다.
3장. 자유의 땅으로 출항하기 전날 밤이었습니다. 광풍이 몰아쳤고 그 밤을 견디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그 배에 올랐습니다. 사람들의 이마에는 하나같이 피가 묻어 있었는데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배가 시커먼 바다 위로 출항했습니다. 배에는 노예에서 해방될 새로운 땅으로 가려는 승객들과 이들을 돌보는 승무원들, 그리고 그 승무원들의 수장이며 배를 설계한 신비로운 인물로부터 열쇠를 받았다는 선장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선장과 승무원들은 설계자가 남긴 7개의 보물을 받아서 승객들에게 서비스하였습니다. 항해하면서 그들은 바다 위에서 희망 없이 떠돌며 용케 살아남은 난민들을 국적 불문하고 모조리 배에 태웠습니다. 그 난민들도 역시 섬에서 빠삐용처럼 무작정 탈출하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4장. 항해하면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타고 있는 배에 대해서 이상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배는 어느새 크기를 가늠할 수조차 없이 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거대한 배가 엔진과 프로펠러도 없고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가는 것이었습니다. 배위에서 어떤 소란이 생기건 배는 항로를 이탈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때로 세 명이 동시에 선장이라고 우기는 일도 생겼고 승무원들 중에서는 승객들을 돌보기 보다는 사리사욕과 권력다툼에 몰두하는 이들도 생겼습니다. 승객들은 패싸움을 하며 서로 죽이는 일들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때로는 거대한 암초에 부딪혀 배에서 3만개가 넘는 작은 파편들이 떨어져 나간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신비스럽게도 배는 어떠한 혼란 속에서도 침몰하지 않고 묵묵히 순항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배 자체에 스스로의 생명과 의지가 있는 듯 했습니다.
5장. 어느 비바람 치고 캄캄하던 밤에 사람들은 사막과도 같은 배 위 생활이 슬퍼서 배를 헤매다가 문득 배 가장 낮은 밑바닥에서 사람들이 모여 밤낮없이 노를 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와 했습니다. 그들은 배 위에서 맡은 일을 묵묵히 하다가 시간 날 때마다 조용히 어둡고 축축한 배 밑바닥으로 내려와 열심히 노를 젓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별빛이 그들을 비추고 있고 그 빛에 이끌려 함께 노를 젓는다는 알 수 없는 말을 했습니다. 노 젓는 일을 잠시 내려놓고 갑판에서 휴식을 취할 때면 어김없이 바다 위에 그 별이 뜬다고 해서 그들은 그 별을 ‘바다의 별’이라고 불렀습니다.
6장. 사실 배에 오를 때 모든 사람들은 선물을 하나씩 받았습니다. 그것은 작은 소쿠리였는데 생명의 물을 담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배의 살아있는 돌에서 흐르는 그 물을 담아 자기 방으로 가져가 보았으나 줄줄이 흘러버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기한 채 방구석에 팽개쳐두고 소쿠리를 받은 일조차 잊고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조상들에게도 613가지의 물건을 담을 수 있는 소쿠리가 있었다고 전해졌습니다. 어렵기는 했지만 아주 소수의 사람들은 물건들을 모두 담는데 성공해서 으스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배의 설계자가 613개 대신 가장 중요한 딱 한가지만 채우면 된다고 한, 그 생명의 물은 줄줄 흘러버려 오히려 담기가 더 불가능했습니다. 사람들은 좌절하고 소쿠리는 먼지가 쌓여갔습니다. 그런데 노를 젓는 이들은 소쿠리를 꺼내서 물을 담아 자기 방의 항아리에 채우고 있었습니다. 개중에 몇천 번 몇만 번을 시도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들은, 비록 아직 물을 채우지 못했지만, 때가 끼어 더럽던 그 소쿠리가 너무나 눈부시게 깨끗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소쿠리에는 별빛과 생명의 기운이 넘쳤습니다. 하루하루 삶이 고단하였지만 그들은 그 와중에도 바닥으로 바닥으로 물처럼 흘러 내려가 노를 열심히 저었습니다.
7장. 배 위에서는 때때로 때 이른 파티가 열립니다. 내 소쿠리가 때 타고 먼지가 쌓이는 줄도 모르고 그저 취해 있습니다. 불이 너무 밝아서 바다 위에 떠있는 별이 보이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사람들의 기쁨은 저마다 기준이 달라서 서로를 이어주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슬픔과 고통은 사람마다 비슷해서 서로를 이어줍니다. 이제 사람들은 배가 곧 설계자의 몸이라는 것을 희미하게 느낍니다. 그리고 바다 위에는 하나의 별이 그 배를 비추면서 배를 가득 채웁니다. 사람들은 그 별빛과 함께 노를 젓다가 지칠 때면 갑판 위에 올라가서 올리브 가지를 입에 문 비둘기를 기다립니다. 이 검은 바다를 건너 새 땅의 시민권을 받을 그 때까지 사람들은 항아리의 물이 채워지지 않더라도 바다의 별이 주는 위로를 받으며 희망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소쿠리: 기도와 관련한 ‘물과 바구니’의 비유(출처가 잘 확인되지 않음)에 착안해서 ‘예나 지금이나 신의 뜻을 담지 못하는 인간의 가련한 실존’ 정도의 의미로 차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