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눈부신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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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히 소낙비를 쏟는 먹구름 사이로 하늘의 나머지 절반은 저리도 푸르고 깊다. 여기저기서 무리지은 먹구름들은 햇빛을 받아 언저리가 눈부시고 그 아래 푸른 들판은 소나기로 젖은 채 영롱하다. 주위에는 늦은 단풍으로 물든 숲이 화려한 병풍으로 초원을 둘러싸고 있다. 비를 내리는 먹구름과 빛을 쏟아내는 푸른 하늘이 이렇게 섞여있는 날도 드물지 싶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에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라는 시도 있다. 그러나 오늘은 푸르르기만 하지 않다. 먹구름과 바람이 지나갈 듯 사라지지 않는다. 생명 또한 저 하늘처럼 눈부시게 푸르지만 그 안에는 늘 죽음이라는 먹구름을 품고있다. 그렇지만 먹구름과 소나기 탓에 하늘은 더 눈부시게 푸르듯,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은 더욱 빛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삶은 마냥 좋기만 하지 않다는 것, 그래서 이런 날이면 오히려 더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된다.

나에게 그리움의 끝판왕은 ‘천국’이라는 말에 농축되어 있다. 그러나 천국은 지옥을 배제하고는 존재할 수가 없다. 요즘은 천국이나 지옥을 믿는 사람 자체가 뭔가 교양이 부족하고 시대에 뒤쳐진 사람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지만, 종교를 좀 믿는다는 사람들 조차도 지옥은 뭔가 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하느님이 자비하시고 사랑 자체이라면 어떻게 지옥이라는 잔인한 형벌을 고안해서 사람을 영원한 고통에 버려두겠느냐는 것이다. 설사 지옥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한 잠깐의 과정이지 않겠느냐 생각하기도 한다. 백번 양보해서 그것이 영원한 것이라 해도 그것은 머무르는 ‘장소’가 아니라 단지 뭔가 아쉬운 영혼의 ‘상태’라든가 혹은 100% 행복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는데 1% 밖에 실현되지 않은 ‘상황’ 정도가 아닐까 추측해보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고통과는 거리가 멀다. 아쉬움은 고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무신론자들에게는 영혼이라든가 사후세상 같은 것은 없을테니 천국과 지옥은 다만 지금 당장의 문제일 뿐이다. “천국과 지옥이 어디있겠어요… 지금 기쁘면 천국이고 지금 괴로우면 그게 지옥이지…”

의외로 신학을 공부한 사람들일수록 지옥을 부정하는 경향이 많다. ‘신학을 공부할수록 신앙을 잃는다’라는 속설도 나돈다. 현대의 인문학적인 환경에서 공부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들이 펼치는 나름 현대적인 주장들을 듣는 나의 평범한 팔랑귀는 지옥은 없다하니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래도 나름 조심스러운 사람들처럼 혹시 모를 일이므로 일종의 보험을 들어두는 심정으로 일단 세례 정도는 받아두고, 시간을 내어 일주일에 한번 미사 정도는 참석하며, 하루에 한번 정도는 정해진 기도를 한다든지 등의 기본적인 신앙행위는 한다. 그 정도면 보험은 들어둔 셈이니, 나는 최소한으로 지불한 보험료를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에너지를 세상이 주는 위로에 안심하고 올인한다.

지옥이라는 곳(?)이 없다면 악마도 의미가 없어진다. 악마의 본질적 미션은 사람들을 영원히 불행하도록 하는 곳으로 이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목적을 위해 악마는 사람의 눈을 가리고 허상을 불어넣으며 당장의 안락함을 추구하도록 이끈다. 그러나 요즘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악마는 힘의 상징이 되기도 하고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붉은 악마’라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대견한가. 또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헬 보이’ ‘베놈’ ‘고스트 라이더’ ‘스폰’ 등에서는 악마적인 만화 속 주인공들은 계속 영화화되어 ‘힘’이 만능인 세상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덱스터’라는 인물이 다른 연쇄살인마들을 연쇄살인한다는 이유로 ‘미워할 수 없는 연쇄살인마’로 포장되기도 한다. 이쯤되면 조폭이 주인공인 영화는 귀여운 수준이고, 수퍼맨의 아들이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하는 것은 건전할 정도이다. 부지불식간에 내 영혼은 악마의 영업대상이 되어있다.

어느날 악마의 우두머리인 루시퍼(Lucifer, 아이러니하게도 ‘빛을 가져오는 자’라는 뜻이다)가 주재하는 연말시상식이 열렸다. 사람들을 가장 많이 가입(?)시킨 악마들(demon)에게 상을 주는 자리였다. 3등에게 루시퍼는 영업비결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그는 “나는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다, 지금이 바로 천국이고 지금이 지옥이다. 하고싶은 거 다하고 살아라.’ 하고 속삭였습니다.” 라고 답했다. 그러자 시상식장에 모인 이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 다음 2등에게 시상을 했다. 루시퍼가 ‘너의 비결은 무엇이었느냐?’하고 묻자 그는 “저는 사람들의 취약한 부분을 집중공략했습니다. 바로 성(性)입니다. ‘성은 아름답다, 성을 즐기는 것은 인간의 자유요 기본권이다, 법은 인간이 만든 것일 뿐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 라고 바람을 넣었습니다.” 그러자 관중들은 탄성을 지르며 다시 기립박수를 보냈다. 마지막으로 1등에 대한 시상이 있었다. 모두 ‘아니, 2등 3등보다 더 뛰어난 영업비밀이 있을까?’하며 숨죽이면서 1등의 입에 귀기울였다. “저는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에게 ‘적당히 해 적당히. 하느님도 즐기고 지금 현재도 즐기고, 양다리도 괜찮아’ 하고 속삭였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영원이라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대로라면 사방 1km짜리 바위 위에 새가 천년에 한번식 내려앉아서 그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지는 것보다도 긴 세월이다. 아무래도 영원이라는 주제는 나의 뇌용량을 언제나 초과한다. 그러나 영원한 천국을 그리워하려면 분명 영원한 지옥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하느님이 아무리 자비롭다고는 하나 본인조차도 ‘정의’를 거스를 수는 없을 테니까. 단 0.001%의 독이 섞이더라도 우리는 그 물을 마실 수가 없듯이, 마찬가지로 영원한 거룩함에는 단 0.001%의 악도 섞일 수 없을 것이다.

나의 하루를 돌아보면 아침에 눈뜨고 세수하고 식사를 하고 일을 하고 취미활동을 하고 다시 식사를 하고 TV를 시청하다가 잠이 드는 생활이 반복인 평범한 일상이다. 이런 평범한 사람에게도 1등 영업사원이 심어놓은 악이 여기저기 스며있음을 느낀다. 바람불어 먹구름은 절로 사라지겠지 하기에는 나의 양다리가 너무 견고하다. 나의 ‘유한한 잘못’으로 ‘영원한 형벌’을 당해야 한다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도 잠깐 들기도 하지만, 이내 그 독(유한한 잘못)이 아무리 소량이라도 영원한 생명의 물과 섞일 수 없다는 것도 너무 당연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일급수가 아닌 처지가 슬프지만 나는 오늘 먹구름 낀 푸른 하늘 아래 소나기를 맞으며 천국을 그린다. 어쨋든 눈부신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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