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일을 한다(그렇겠지 설마?). 깨어있는 시간의 반 정도가 일하는 시간이다. 하루 8시간, 주5일, 25살에서 65세까지 40년을 일한다고 가정하면 8만3천 시간 정도이다. 한국의 경우 연간 노동시간 통계(2014 OECD)를 40년에 대입해 보면 8만5천 시간을 일한다. OECD 38개 국가 중에서 세번째로 일을 많이 하는 나라이다.
출퇴근 시간 등 일을 위한 준비 시간까지 더한다면 일이라는 것은 실로 한 사람의 일생을 특징 지운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0년대에 비해서 전세계적으로 생산성이 대체로 400%는 향상되었는데도 (4시간만 일해도 당시 40시간 일한 것과 똑 같은 효과가 있다) 실제로는 오히려 50년대 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일에 매달린다. 현재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열 배나 더 많은 생산, 더 많은 돈이 필요해진 것이다. 지금은 70% 이상이 맞벌이를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이다. 이제 맞벌이는 옵션이 아니라 필수이다.
과로사라는 말은 1980년대에 일본에서부터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는데 kharosi (과로사, Death from overwork)가 국제적용어로 통용될 정도로 일본은 과중한 노동으로 유명하다. 여전히 일본은 과로로 인한 산재신청이 사상 최고를 경신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은 연간 1,729 시간(OECD 22위) 일한다. 그런데 한국은 이보다 일년에 2,124시간이나 일한다. 일년에 395시간을 더 일한다는 것은 꼬박 43일(하루 9시간 가정) 내지 49일(하루 8시간 가정)을 더 일하는 셈이다. 일본이 심각하다면 한국은 더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대체로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일을 즐기는 사람은 10% 정도뿐이다. 60% 정도는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고 대답하고 30%는 억지로 마지못해 일한다고 대답한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람이 일하지만 모든 사람이 일을 즐기지는 못하는 현실, 인생을 견디는데 소모해야 하는 슬픈 현실이다. 그래서 다들 노동을 저주나 형벌쯤으로 생각한다. 일을 하지 않는 것이 행복한 것이고 그런 시간을 갖기 위해서 열심히 돈을 번다.
한편, 신기하게도 수천 년 전 ‘창세기’를 기록한 자들의 감성은 일에 대해서 전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에덴 신화의 첫째와 둘째 장을 보면 일은 형벌이 아니라 축복으로 먼저 주어졌다. 신 자체가 일(창조)을 하는 신, 뭔가를 계획하고 만드는 빌더로서의 신으로 묘사되어 있고 일을 마친 일곱째 날에는 휴식 취할 정도였다. 인간은 이런 신과 닮은 성향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인간은 무언가 일을 하도록 프로그램 되었고 그것은 축복으로서 주어진 것이다. 신은 자신의 노동 파트너로서 인간과 꼴라보(collaboration)하려고 작정하였고 그래서 창조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인간은 뭔가 좋은 일을 창조적으로 성취해 갈 때 자신의 가치를 느끼고 인간성을 회복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신의 첫 ‘오다’는 가드닝 일을 해라, 경작하고(cultivate) 돌봐라(serve) 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일은 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 인간에게 과오의 대가로 ‘평생 노동과 산고로 시달리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형벌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노동과 산고가 형벌이 되는 것은 인간 자신의 선택으로 그것들을 왜곡시킴으로써 오는 결과일 것이다.
에덴 신화에는 ‘일을 해라’, ‘레저 시간을 가져라’, ‘사랑해라’ 하는 메시지가 동시에 담겨 있다. 그래서 인간성은 노동과 레저와 사랑의 세가지 활동으로 이루어졌는지 모른다. 이 중 하나에 왜곡이 생기면 우리 인간성을 상실한다. 그러나 이 세가지는 모두 현대에 와서 왜곡되어 있다. 노동의 경우, 죽으면 충분히 쉴 텐데 하면서 오직 일만이 나를 완성해 줄 것처럼 죽도록 일만 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일은 형벌이므로 오로지 노동을 피할 생각을 한다.
인간은 인간성을 유지하며 일할 때 신바람이 나는 법이다. 그렇게 창조되었다. 그러려면 다음의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한다. 첫째로 일을 할 때 자신의 일이 어떤 목표로 나아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둘째 그 일에서 자율성과 자발성을 가지고 스스로 의사결정 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있어야 한다. 셋째, 자신이 하는 일이 의미가 있다고 느껴야 한다. 사람들은 의미에 굶주려 있다. 자신의 행위가 뭔가 값어치 있고 의미 있는 무언가에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만으로도 일이 훨씬 보람 있어진다.
일은 방향을 잘 잡아 관점을 바꿀 수만 있다면 번영과 축복의 길로 들어선다. 그렇지 않은 노동은 일생 8만~9만 시간을 견뎌야 하는 형벌이다. 괴롭고 지루하던 일이 관점 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로 돌변하는 경우는 수 없이 많다. 에덴 이후의 일은 그래서 신과 함께하는 창조의 꼴라보임과 동시에 왜곡을 치유해가는 힐링의 꼴라보이다. 노동의 힐링, 그것은 애당초 일이라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에게 사용하도록 용도가 정해졌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만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