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에서

새벽 일찍 숙소를 나섰다.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봄날을 가득 담은 공기가 얼굴을 스친다. 춥지는 않았다. 다행히 시외버스 주차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비는...

사랑의 비율

맨 땅에 막대기를 꽂기만 해도 잎이 피어난다는 오월에 우리는 결혼했다. 전날 밤이 되어서야 다음 날이 바로 결혼 기념일이라는 것을, 아내의 귀띔으로 알게 되었다. 뭔가...

1%의 소중함

아내는 영사관에 가져갈 서류를 준비하다가 오래 전에 나에게서 받은 손 편지를 발견하고는 키득거렸다. 줄줄이 손발 오그라드는 내용이다. 어쩌다가 막내 손에 들어가 하루 종일 놀림감이...

아버지와 아들

예전에 식탁에서 어린 조카가 입에서 먹다가 뱉은 것을 형님이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입으로 가져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참 거시기 하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모든 것은 허용된다

“진실은 없고 모든 것이 허용된다.” 아이들이 열광하는 어떤 컴퓨터게임 속 어느 비밀결사조직의 신조(creed)이다. 이 조직은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암살을 동원하기도 한다....

감정 도네이션

<우리는 자기를 변명하고 싶은데도, 부당한 취급을 받았는데도 침묵을 지킨 적이 있는가. 우리는 아무런 보상도 못 받고 남들은 오히려 나의 침묵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는데도 남을...

낙엽을 남기고 떠난 사랑…

낙엽이 떨어진다. 지인의 슬픈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것이 그렇게 흔한 병이었던가! 우리의 생명은 마치 미약한 심장이 보조장치로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늘 죽음과...

서주우유 열 방울

간식 투정하는 막내에게 아내는 어릴 적 내 이야기를 들려주며, “너는 호강하는 줄 알아라.” 했다고 한다. 언젠가 아내에게 중학교 때 시작되었던 우유급식에 관해서...

몸이 그리워질 무렵

이웃에 있는 초등학교로 향했다. 남은 커피를 마시며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차창 안으로 스미는 따듯한 기운이 심상치 않다. 오랜만에 햇살로 눈부시다. 주위에는 아빠들을...

어느 추운 날의 풍경

아침 기온이 영하 20도, 오랜만에 몹시 추운 날씨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일은 아예 포기하고 말았다. 몇 년 동안이나 쭉 내 몫이 되어버린 일과였지만...

내 생애의 모든 것

얼마 전에 참석했던 피정(retreat)에서 우연히 어떤 사람의 성장과정을 듣게 되었다. 몇분도 채 되지 않는 그의 담담한 회고에 내 가슴은 먹먹했다.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어떤 얼굴

런던의 코로나 상황은 좀 나아진 것일까? 그러나 아직 공기의 흐름은 바뀌지 않은 것 같다. 마음도 아직 예전처럼 자유롭지 않다. 공원에는 드문드문 조심스럽게...